2. 모방(Maubant) 신부의 조선 잠입(朝鮮潛入)
① 주교께 마지막 예를 다한 뒤에 모방(Maubant) 신부는 그대로 길을 계속하였다. 이제 여기에서 잠깐 이야기를 중단(中斷)하고, 조선(朝鮮)에 맨 처음으로 잠입한 프랑스 선교사(宣敎師)를 소개(紹介)하기로 하자.
삐에르 ․ 필립보 ․ 모방(Maubant)(그의 한국성(韓國姓)은 나씨(羅氏), 이름은 중국 식 본명을 따라 백다록(伯多綠(베드로))이라 했다)은, 1803년 9월 20일 바이외(Bayuex) 교구(敎區)에 속하는 봣시(Vassy)의 점잖은 농부(農夫)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롤로 ․ 모방(Maubant)이고, 어머니는 카타리나 ․ 뒤슈맹(Duchemin) 이었다. 한 존경할만한 성직자(聖職者)가 어린 베드로에게서 발견한 훌륭한 장점 (長點)에 감동(感動)하여, 그의 교육(敎育)을 맡았고, 첫 영성체 이후 그에게서 잠시라도 눈을 떼지 않았다.
사실 어린 모방(Maubant)은 같은 또래의 아이들 가운데서 열심(熱心)과 순진 함과, 공부에서의 부지런함이 뛰어났었다. 어떤 부인(婦人)이 하루는 어린 모방 (Maubant)에게, 그렇게 늘 책만 읽어서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물으니, 그는 이 렇게 대답하였다.
저는 지식을 넓히고 싶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된 다음에는 세계의 끝까지 가서
서, 우상숭배자(偶像崇拜自)들에게 포교(布敎)를 하겠습니다.
② 그는 약속을 지켰다. 사제(司祭)로 서품(敍品)(1829년 5월 13일)된 후에, 그는 두 본당(本堂)에서 보좌신부(補佐神父)로 성무(聖務)를 행했다. 그런 다음에 오래 전 부터 간청해오던 사도직생활(使徒職生活)에 몸을 바칠 허락(許諾)을 주교에게서 받아, 1831년 11월 18일에 외방전교회 신학교(外邦傳敎會神學校)로 들어가, 성 소(聖召)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선교사(宣敎師)의 부족으로 인하여, 그의 이 시련기간(試鍊期間)은 단축되었고, 1832년 3월에는 마카오를 향해, 르 ․ 아브르(Havre)를 출발했다. 항해(航海)는 순조로웠고, 마닐라에서 몇 주일 동안 기항(寄港)한 뒤에, 9월 11일에 중국(中 國)에 도착했다.
사천성(四川省)에 임명되어, 그 포교지(布敎地)를 향하여 길을 떠나, 얼마동안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主敎)와 동행하였다. 조선(朝鮮)의 불쌍한 교우(敎 友)들을 구원(救援)하려고 단신(單身)으로 떠나가는, 이 용감(勇敢)한 주교(主敎) 를 뵈옵자, 그의 마음은 깊이 감동되었다. 그는 주교(主敎)와 같이 가겠다고 나 섰다. 모방(Maubant) 신부는, 첫 눈에 사람의 마음을 끄는 그런 훌륭한 장점(長 點)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는 진실하고, 점잖았으며, 그의 성격에는 약간 거친 면도 있었다. 그러나 착한 갑사(Capsa) 주교는, 이 동행(同行)의 경건(敬虔)함과 열성(熱性)과 헌신(獻身)를 생각하여, 기꺼이 조선(朝鮮)의 선교사(宣敎師)로 받 아 들였다.
③ 우리는 브뤼기애르(Bruguiere) 주교(主敎)의 보고서(報告書)에서, 모방(Maubant) 신부가 복건(福建) 힝호아(Hing-hoa)의 작은 교우촌(敎友村)에서 몇 달을 체류 (滯留)한 다음에, 어떻게 조선을 향해 길을 떠났고, 어떻게 중국전토(中國全土)를 건너질러, 대낮에 나귀를 타고 북경(北京)에 들어왔었는지를 보았다. 그때에 갑 사(Capsa) 주교는 이런 말을 했다.
중국말을 도무지 모르고, 인도자도 거의 없이, 서양인 선교사가 때로는 걷고 때로는 나귀와 우마차를 타고, 중국전토를 건너질러 수도(首都)에 들어왔었는 데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을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황제(皇帝)의 면장(免狀)없이 북경에 들어온 서양인으로는 모름지기 그가 처음 일 것입니다.
북경(北京)에 계시는 주교(主敎)의 놀라움은 너무나 커서, 모방(Maubant) 신부 를 2개월이나 몰래 숨겨두었다. 그런 다음 비밀리에 그를 달단(韃단)으로 넘어가 게 하였다. 모방(Maubant) 신부는 서만자(西灣子)로 물러가, 거기에서 그가 사랑 하는 주교(主敎)가 오는 것을 맞이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는 주교를 모시고, 이 외딴 곳에 1년가량을 머무르며, 중국말을 배우는 것으로, 한가한 시간을 보냈 다.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主敎)가 별세(別世)한 후, 거기에서 조선국경(朝 鮮國境)에 가려고, 길을 떠났던 것이다.
④ 길을 떠날 무렵에 파리 신학교지도자(神學校指導者)들에게 아래와 같은 글을 보냈는데, 그것을 보면 그때 그의 심경(心境)이 어떠했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제가 조선에 들어간다는 것이 제게는 몹시 불안스러운 묵상(黙想)거리가 된다 는 것을 자백합니다. 왜냐하면 한 포교지(布敎地)를 관리(官吏)한다는 어려운 직책(職責)을 다하기에는 저의 능력(能力)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떨리고, 거기에 대해서 천주께 셈을 바쳐야 할 것을 생각하면, 더욱 두렵습니다. 지극히 친애하는 여러분, 그러나 저는 주님께서 부르신다고 생각하는 그곳에 갈 기회(機會)를 죄를 짓는 일 없이 놓칠 수는 없다고 늘 믿어왔습니다. 지금 여 러분들의 손을 통하여 우리를 보내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복음(福音)을 전하는 데에, 학식(學識)과 재주에 뛰어난 사람들을 쓰실 생각이 있었다면, 가말 리엘(Gamaliel)과 나타나엘(Nathanael)을 대사도(大司徒)에 추가(追加)하지 않으 셨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우구스띠노 성인의 말을 들으면, 그분들이 법률박 사(法律博士)였기 때문에 사도직(使徒職)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를 떠나기 전에도, 떠난 후에도, 저는 여러 번 이러한 두 가지 질문(質 問)을 스스로에게 했습니다.
너는 그렇게도 고상하고, 그렇게도 어려운 직무(職務)를 다할 자격(資格)이 있 느냐, 능력이 있느냐?
그러나 제가 자격(資格)이 없음과, 능력(能力)이 없음을 늘 자인(自認)했으면서 도, 저는 천주의 말씀에 순종(順從)한 것 같이 생각됩니다. 이와 똑같은 생각이 떠오르는 이 어려운 지경에 있어서, 또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지난날이나 마찬가지로 순종(順從)이 부르는 곳으로 나아가, 어떤 지경을 당하든지, 천주의 성의(聖意)를 알아 뵙고, 천주의 자비로운 구원(救援)과 도우심에 몸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친애하는 여러분, 저는 이러한 심정(心情)으로, 월요 일에 서만자(西灣子)를 떠나, 돌아가신 우리의 친애하는 갑사(Capsa) 주교님이 닦아놓으신 길을 따라, 조선교우(朝鮮敎友)들이 지정(指定)한 시기(時期)에 변문 (邊門)에 가 있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로 따로, 저와 조선포교지(朝鮮布敎地)를 위하 여, 서원(誓願)미사 여섯 대씩을 드려주시기를 청합니다. 첫 번은 조선(朝鮮)에서 오직 천주성삼(天主聖三)만이 흠숭함을 받고, 우상숭배(偶像崇拜)나 그 밖의 가 톨릭신앙(信仰)에 배반(背反)되는 숭배는 무엇이든지 없어지기 위하여,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三位一體)서원(誓願)미사 한 대, 둘째는 조선(條線)의 선교사 (宣敎師)들과 교우(敎友)들의 정신과 마음을 더욱 더 비추시고 고무(鼓舞)해주시 며, 가톨릭 신앙(信仰)을 모른 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알고 봉행(奉行)하게 해주 시기 위해서 천주성령(天主聖靈)서원(誓願)미사 한 대,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께 서 저희들과 사랑하는 조선교우(朝鮮敎友)들에게 보내시거나, 혹은 닥쳐오기를 허락(許諾)하실지 모르는 모든 고생(苦生)을, 그의 모범(模範)을 따라, 인내(忍耐) 와 인종(忍從)으로 참아 받도록 가르쳐 주십사고 청하는 예수수난(受難)서원(誓 願)미사 한 대, 넷째는 동정성모(童貞聖母)께서 우리와 사랑하시는 조선교우(朝 鮮敎友)들을 어머니다운 보호(保護)로 덮어 거두어 주십사고 청하는 동정성모(童 貞聖母)서원(誓願)미사 한 대, 다섯째는 이 나라를 특별한 정성(精誠)으로 보호 해 주시는 것을 감사(感謝)하고, 계속해서 보호(保護)해 주십사고, 천신(天神)들, 특히 조선(朝鮮)의 수호천사(守護天使) 들께 드리는 서원(誓願)미사 한 대, 여섯 째는 주님께 곤란(困難)을 없애고, 장애물(障碍物)을 덜어주시며, 조선에서 천주 의 복음(福音)의 씨가 자라고 열매를 맺게 해주십사고 청하는 포교서원(布敎誓 願)미사 한 대, 이렇게 드려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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