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한국 천주교회사

[스크랩] 제 4장 모방신부의 입국- 2

손드러 2010. 1. 19. 09:20

④ 갑사(Capsa) 주교가 출발한 지 24일째가 되는 11월 1일, 주교(主敎)를 모시고 떠났던 보행꾼들이 서만자(西灣子)로 돌아와, 그가 별세(別世)했다는 소식을 모 방(Maubant) 신부에게 전했다. 이 선교사(宣敎師)는 자신이 조선(朝鮮)에 들어갈 수 있는 유리한 기회(機會)를 기다리기 위해, 이 부락(部落)에 남아 있었던 것이 니, 서양 사람들끼리 여행(旅行)하는 것이 위험(危險)하기도 했거니와, 한편 브뤼 기에르(Bruguiere) 주교(主敎)가 조선교우(朝鮮敎友)들과 약속(約束)한 대로, 이 들은 한 번에 선교사 한 분만을 모셔 들이기로 되어 있는 까닭이었다.

가슴을 에는 듯한 고통(苦痛)을 느끼기는 했으나, 천주의 성의(聖意)를 따르는 데에 습관(習慣)이 된 모방(Maubant) 신부는 이내 결단(決斷)을 내렸다. 샤스땅 (Chastan) 신부를 불러 오기에는 너무나 시일이 촉박(促迫)했었다. 그래서 갑사 (Cspsa) 주교(主敎) 대신 조선국경(朝鮮國境)에 나타나기 위해, 주교님이 갔던 길을 따라가려고 혼자서 출발하였다.

뻴리구(Pie-li-keou, 일명 마갸즈(馬架子)로 불리는 신자마을))에 도착하자, 아직 매장(埋葬)되지 않았던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主敎)의 시신(屍身) 곁에 인 도되어, 그 거룩한 주교의 시신(屍身)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기도를 드릴 수가 있었다. 모방(Maubant) 신부는 성모자헌축일(聖母自獻祝日)인 11월 21일 에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主敎)의 눈을 감겨드린, 중국인 라자리스트 고 신부의 복사(服事)를 받으며, 할 수 있는 대로 성대(盛大)하게 장례식(葬禮式)을

지냈다. 그 부락(部落)과 그 부근의 교우(敎友)들이 모두 장례식에 참석(參席)하 였다. 교구장(敎區長)의 시신은 근처에 있는 산 남향판의 교우들 무덤에 묻혔다.

무덤 위에는 갑사(Capsa) 주교의 중국 성(中國姓)인 소(蘇)자가 새겨진 묘석(墓 石)이 세워졌다. 서부달단(西部韃단)의 이름도 없는 촌락(村落)인 이곳에, 초대 조선교구장(初代朝鮮敎區長)이 영광스러운 부활(復活)을 기다리며, 잠들어 있는 것이다.

그의 사명(使命)은 완수(完遂)되었다. 천주께서는 선교사(宣敎師)들에게 조선 (朝鮮)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그를 일으키셨던 것인데, 그 길이 개척(開拓)되 자 그분은 세상을 상을 받으러 간 것이다. 갑사(Capsa) 주교는 파리의 신학교 지도자들(神學校指導者)들에게 보낸 편지(便紙)에, 그럴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자 신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조선(朝鮮)으로 갈 선교사(宣敎師)가 갖추어야 할 자 격(資格)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이런 말을 썼다.

󰡒선교사가 될 사람은 건실한 경건심(敬虔心)이 있어야 하고, 열광적은 아니면서 도 성격이 확고(確固)해야 하며,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곤란(困難)과 위험 (危險)과 반대(反對)에도 절대로 굴하지 않는 항구심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희생(犧牲)을 용감하게 감수(甘受)하고, 모든 일에 천주 외에는 보지 않는 신 부라야 합니다.󰡓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主敎)는 바로 이런 분이었다. 기도(祈禱)와 고신극 기(孤身克己)가 그의 가장 좋아하는 덕행(德行)이었다. 그는 거의 날마다 대재 (大齋)를 지켰다. 그는 매주,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날마다 보통 묵주 신공(黙珠神功)을 드리는 외에, 칠고(七苦)의 묵주신공과 그밖에도 성모(聖母)께 드리는 기도 여럿을 드렸다. 그는 날마다 자기의 고생스러운 사업(事業)의 성공 (成功)을 위해서, 또한 살아있거나 혹은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자선심(慈善心) 많은 전교회원(傳敎會員)들을 위해서 특별한 기도를 드렸다.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主敎)의 편지들은 모두가 사도적(使徒的) 순직(殉 職)과 겸손(謙遜)이 넘쳐흐르고, 그가 이러한 덕행(德行)을 고도로 발전시켰다는 것을 증명(證明)한다. 그는 파리 신학교장(神學校長)에게 이런 말을 써 보냈다.

󰡒내가 비록 이곳저곳의 대 ․ 소신학교(大小神學校)에서 여러 해를 지내기는 했 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나은 지도자(指導者)가 된 것은 아닙니다. 나는 학생 들을 아는 재간(才幹)이 없고, 그들을 지도하는 재간은 더욱 없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이런 말을 썼다.

󰡒내가 올린 기나긴 보고에 교장신부님의 귀에 거슬리는 것이 있거나, 적당치 않 은 용어나, 무모한 판단이나, 그와 비슷한 것이 있으면, 친절하게 일러주십시 오. 천주의 도우심을 빌어, 결점(缺點)을 고치고 남의 빈축을 산 행위를 보상 (報償)하도록 힘쓰겠습니다. 내게는 이러한 불행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아무것 도 없습니다. 내 언행(言行)에 나무랄 것이 있으면, 교장신부님이 친절한 마음 으로 모두 주의(注意)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이 겸손(謙遜)에는 또한 남의 잘못은 언제나 용서(容恕)하게 하는 완전한 온 화(溫和)와 친절(親切)이 곁들여져 있다. 남의 행동(行動)이 분명히 나쁜 것일 때 에는 그것을 그 사람의 뜻에 돌렸으니,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主敎)의 생 각으로는, 그 뜻은 언제나 착한 것이었다. 자기가 이렇게 변호(辯護)하여 주는 잘못으로 인하여, 자신이 괴로움을 받게 될 때에도 마찬가지로 행동하였다.

⑤ 그러나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主敎)의 덕행(德行) 중에서도 가장 빛난 것 은 열심(熱心)이었다. 이 불같은 열심(熱心)이 있으므로 해서, 조선(朝鮮)에 복음 을 전해주기 위해, 아무런 자력(資力)도 없이, 또 다른 선교사(宣敎師)들이 뒤를 따를지도 모르는 채 홀로 몸을 바치게 되었고, 그렇게도 심한 피로(疲勞)와 곤핍 (困乏)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이런 말을 썼다.

󰡒나는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고, 무엇이든지 당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이 포 교지(布敎地)를 청하고 수락했을 때에 나는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하겠으며, 얼마나 많은 위험(危險)을 겪어야만 하겠는지를 미리 알았습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예상(豫想)했던 것보다는 위험을 덜 당했습니다. 천주께서는 곳곳에 계시 고, 이 세상에서 내가 당하는 일치고, 천주의 명령(命令)과 허락(許諾)없이 되 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천주께서 기도(企圖)하시는 바는 언제나 옳고, 언제 나 우러러볼 만한 것이니, 나의 본분은 그 명령과 허락을 은총(恩寵)의 도우심 으로 따르는 데에 있습니다. 모든 이에게 버림을 받기 전에는, 혼자서는 여행 을 절대로 계속할 수 없게 되기 전에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길을 떠났을 때에는 이미 병이 들어 심한 두통(頭痛)으로 무척 고통(苦痛)을 당했고, 기진(氣盡)한 위(胃)는 무슨 음식이든지 거의 받아들이지를 않았으며, 걸음을 걷기도 몹시 힘이 들었고, 거기에다 추위 또한 혹독(酷毒)하였 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사랑은 어떤 장애물(障碍物)보다 강하여, 오직 죽음만이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천주의 사랑은 아무리 피로(疲勞)하여도 기진(氣盡)하지 않고, 어떠한 장애(障 碍)에도 오므라들지 않으며, 어떠한 두려움에도 공포(恐怖)를 느끼지 않는다. 사랑은 성한 불꽃같이 위로 치솟고, 모든 장애를 무사히 지나간다.󰡓(준주성범 (遵主聖範) 3권 5장)

출처 : 가톨릭 교리신학원 총동문회
글쓴이 : 가브리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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