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한국 천주교회사

정해박해9

손드러 2010. 1. 19. 08:32

⑥ 그 이튿날 이경언(李景彦) 바오로는 아내에게 따로 편지(便紙) 한 장을 썼는데,     이 편지 서두(序頭)에는「정의의 어머니에게」라고 씌어있다. 이것은 이 나라의     예의상 여인(女人)들은 자녀들 중 아무아무의 어머니라는 칭호(稱號)로 불리우게     되어 있는 까닭이다. 정의는 이경언(李景彦) 바오로의 어린 아들의 이름이었다.

③ 이경언(李景彦) 바오로가 아내에게 따로 쓴 편지

 『㉠ 우리가 혼인한 후 13년 동안 우리는 둘이 단 하루도 편안(便安)한 날을 지내     지 못하고, 가지가지 곤경(困境)을 겪었소. 그러다가 갑자가 이별(離別)을 하여,     이 세상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었으니, 천주의 성의(聖意)가 이루어지이      다.

     내 일평생의 행동과 수많은 죄를 생각해 볼 때에, 당신에게 대하여 잘못한 모     든 것을 특히 뉘우치오. 용서(容恕)하여 주시오. 내가 죽은 들 당신을 잊을 수가     있겠소? 이 세상에서 당신한테 의지가 될 것으로는 정의와 그 누이동생이 남아     있으니, 그 애들을 잘 기르고 가르쳐서 내 뒤를 따르게 하시오. 당신으로 말하면     만약에 모든 일에 천주의 성의(聖意)에 복종(服從)하고 주님의 벗이 된다면, 그     것이 참된 행복(幸福)이 아니겠소?

     우리가 서로 이별(離別)한 뒤로 얼마나 많은 곤란(困難)을 당했겠소? 이런 생     각이 들 때에는 가슴이 찍어 눌리오. 그러나 다음에는 천주와 성모 마리아를 생     각하고 불안(不安)을 가라앉히오. 무엇보다도 모두 선종(善終)하도록 힘쓰기 바     라오.

   ㉡ 연풍(延豐)에서는 무슨 소식(消息)이 있었소? 아아, 어머님이 내 처지(處地)를     아시게 되면 어떻게 되실까? 나도 순교자(殉敎者)가 된다면, 어머님에게도 큰 영     광(榮光)이 될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본성(本性)을 어떻게 억제할 수가 있겠     소? 이제는 당신을 아주 하직해야 하겠소. 이제는 종이도 없고, 간수(看守)의 눈     이 번쩍이니, 당신에게 이 몇 줄 글을 써 보내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을 몰래 이     용해야 되오. 이 편지(便紙)를 집안에 두루 읽히기 바라오.

     형님은 어떻게 지내시며, 다시는 뵙지 못하게 된 형수님은 또 어떻게 계시는     지! 내 희망(希望)은 우리가 천국(天國)에서 다시 만나 함께 즐기는 것이오.

     내가 여기서 죽을는지 혹은 서울에 가서 죽게 될는지는 알지 못하오. 만일 여      기서 죽게 된다면, 누님과 같은 장소에서 순교(殉敎)의 영광(榮光)을 받게 될       터이니, 얼마나 큰 은혜(恩惠)이겠소? 천국의 천사(天使), 성인(聖人)들과 전 세      계의 모든 교우(敎友)들이여, 나를 천주께 감사(感謝)하여 주십시오.

   ㉢ 환경 하나하나가 모두 내 사랑하는 누님 순교자의 편지(便紙)와 사연(事緣)을      회상(回想)케 해주는데, 내 일생에 누님만큼 천주를 사랑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오. 이제는 천주를 사랑하고 싶지만 이미 늦었으니 어쩌겠소? 그 생각을 하      면 마음이 조이는 느낌이오.

      그러나 한편으로 내 죄가 무수하다면, 또 한편으로는 천주의 자비(慈悲)도 끝      이 없으니, 이것이 나의 유일한 하나의 희망(希望)이오. 내 힘만 가지고는 한       순간이라도 꿋꿋이 견디지 못했을 거요. 참말이지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 힘은      아무것도 아니고, 천주의 보호(保護)하심이 모든 것을 이룬다는 것을 지금이야      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인정하오.

   ㉣ 박해(迫害)의 그악한 바람이 좀 자거든, 와서 내 물건(物件)들을 찾아다가 아      들에게 갖다 주시오. 두 아이들에게 세례(洗禮)를 다시 주게 하오. 그 애들이       받은 세례가 확실치 않소.

      내가 빚이 좀 있고, 주문 받은 것을 다 마치지 못한 것도 있는데, 거기에 대      해서 내가 느끼는 것을 말로는 다 할 수가 없소. 다만 천주께서 그것을 용서(容      恕)하여 주시기를 바랄 뿐이오. 그러나 당신은 이모든 것을 힘을 다하여 갚도록      하시오.

      어머님께는 따로 상서(上書)할 수가 없으니, 이 편지를 베껴서 보내드리도록      하시오. 당신도 이 세상에서 살날이 많이 남지 않았고, 영원한 복락(福樂)이 가      까웠소. 그러나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그리고 주님 대전(大殿)에서 영원히 다      시 만납시다. 나를 출두(出頭)시키라고 명령(命令)하는 소리가 들리오. 그러면       여기서 붓을 놓겠소.

                                             5월 15일

                                                남편 이경언(李景彦)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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