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이경언(李景彦) 바오로 늘 마음속에 순교(殉敎)하고자 하는 원을 품고 있어, 즐겨 올리브 동산에서 당하신 우리
주 예수의 고난(苦難)을 묵상(黙想)자료로 삼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여 천주를 위하여 죽음을
당할 준비를 하라고 권고(勸告)하며 말하였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천주교가 퍼지게 하려면 우리가 피를 흘려야 합니다.
1827년 전라도(全羅道)에 박해(迫害)가 일어, 전주아문(全州衙門)에서 문초(問招)가 벌어지고 있을 즈음에,
그가 사방에 책과 상본(像本)을 전파(傳播)했던 사실로 고발(告發)이 되었다. 이리하여 전주(全州)의 포졸(捕卒)
들이 이경언(李景彦) 바오로를 잡으러 서울로 파견되었다.
관헌(官憲)들 앞에 출두한 이경언(李景彦) 바오로는 형님과 누님의 영광(榮光)스러운 발자취를 충실히 따라,
그들처럼 용감(勇敢)하게 신앙고백(信仰告白)을 하여, 조선신자(朝鮮信者)들에게 뿐만 아니라, 전 세계(世界)의
모든 천주교인(天主敎人)들에게 찬탄(讚嘆)을 받아 마땅한 모범(模範)을 남겨 주었다.
그가 옥중에서 써 보낸 편지(便紙)에 그 자신(自身)이 당한 문초(問招)를 자세히 기록(記錄)하였으니, 그것을
들어보기로 하자. 이 기록의 정확성(正確性)은 아직 살아 있는 목격자(目擊者)들이 한결같이 보증(保證)하는 바
이다.
① 이경언(李景彦) 바오로가 쓴 옥중 편지
『㉠ 나는순교라도 하면 내 모든 죄가 만족하게 보상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품었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예기치 않고 있던 4월 21일 초저녁에 김성집과 서울 및 지방 포졸(捕卒) 10여 명이 나를 붙잡아 포청
(捕廳)으로 연행하였습니다. 거기에서 내가 상본(像本)을 그린 것이 참말이냐고 묻는 말을 듣고, 모든 것이 탄
로(綻露)난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그것은 사실입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튿날 포장(捕將)이 나를 불러다 놓고 물었습니다.
네가 천주교를 믿는다니 참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누구에게서 배웠느냐?
저의 형님이 이 교 때문에 돌아가신 만큼, 어려서부터 천주교 이야기를 약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
음에는 역시 같은 교 때문에 처형(處刑)된 조숙(趙淑)과 친근해져서, 그와 함께 여러 해 동안 이 교를
봉행(奉行)했고, 마음 가득히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배교한다면 목숨을 보전하여 주리라.
할 수 없습니다.
네가 어제 자백한 것이 참말이냐?
예, 틀림없습니다.
이런 다음 나는 옥으로 다시 끌려갔습니다.
3일 후 형조판서(刑曹判書)는 정승(政丞)의 재가(裁可)를 얻어 나를 포졸(捕卒)에게 인계했고, 이리하여 우
리는 해질 무렵에 한강(漢江)을 건넜습니다. 나는 붙잡힌 때부터 천 가지 근심 걱정에 시달려,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였기에 기진맥진(氣盡脈盡) 하였었습니다. 거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밤을 지내고, 이튿날은 김성집과 포
졸(捕卒) 6명에게 호위(護衛)되어 일찍 길을 떠났습니다.
㉡ 내 본성(本性)이 아주 죽은 것은 아니었는지라, 이 길을 떠나면서 나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러다가 마
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고 길을 가셨는데, 내가 왜 이 길을 걷기를 두려워한단 말인가? 아니, 나
는 예수를 한발 한발 따라 가겠다.
이렇게 결심을 하니, 기운(氣運)이 솟아났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백리 길을 걸어 28일 저녁에 전주진영(全州鎭營)에 이르러, 거기에서 잠깐 쉰 다음에, 영장(營
將) 앞에 끌려 나갔습니다. 영장(營將) 둘레에는 20명가량의 나졸(羅卒)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들고 있는 관솔
불이 환한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光景)을 보니 우리 주 예수께서 올리브동산에서 붙잡히시던 일이 생
각났습니다.
내 성명과 조상(祖上) 몇 분의 성명(姓名)만을 물어보고는 다시 옥으로 데려갔습니다. 따뜻한 방에 얌전한
밥상을 차려다 주었으나, 서너 술 뜨고 나니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잠을 이루려고 몸을 누이니, 두 발
과 두 손에 쇠고랑을 채우고, 목에는 큰 칼을 씌운 다음 문을 잠가버렸습니다.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내
생각은 온통 뒤범벅이 되어 도무지 정신(精神)을 집중(集中)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 이튿날 해가 돋자 진영(鎭營)에 끌려 나가니 영장(營將)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림을 몇 장이나 그렸으며, 책은 몇 권이나 가지고 있고, 공범(共犯)은 누구 누구냐?
나는 솔직히 대답하여, 전에 조숙(趙淑)에게 주었던 성화(聖畵) 몇 장과, 나를 고발한 김성집에게 주었던 상본
(像本) 두장을 신고(申告)하였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였습니다.
공범이라고는 도무지 없습니다. 패가(敗家)한 집안에 홀로 남아, 일가와 친구들에게서 모두 버림받았으
며, 상민(常民)에 이르기까지 저를 멸시(蔑視)하고 얼굴에 침을 뱉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친
구가 없는 저로서 어떻게 공범이란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또 책으로 말씀드리면 온전히 구전(口
傳)으로 배워서, 책이란 그저 가슴속에 새겨져 있을 뿐입니다.
거짓말 마라! 너희들은 무식한 상민들까지도 책을 3, 4십 권씩 가지고 있다는데, 네가 안 가졌다는 말이
냐? 저놈을 되게 쳐라!
매를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공범도 없고, 책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 다음, 상본(像本)과 유리로 만든 성물(聖物)과 그림과 천주의 어린 양의 상(像)과 성패(聖牌)를 가져오라
고 하더니,
이 그림들은 네가 그린 것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하였더니, 다시 옥에 가두었습니다.
영장(營將)은 그 즉시로 감사(監司)에게로 갔고, 얼마 있다가 나는 감영(監營)에 붙은 방으로 끌려 나갔습니
다.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바로 이 전주(全州)읍에서 1801년에 신문(訊問)을 받고 순교(殉敎)한 누님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렇다 나도 누님의 뒤를 따르리라. 참말이지 누님이 나를 이끌어 가시는 게 아닌
가 하고 생각하니, 내 마음에는 비애(悲哀)섞인 기쁨이 솟아났습니다.
㉣ 얼마 안 있어 나는 감사(監司) 앞에 불려 나갔습니다. 감사(監司)는 영장(營將)을 옆에 거느리고 앉아, 내게 몇
가지 말을 물어 보았고, 나는 또 그 전날과 마찬가지로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차림새가 진영(鎭營)보다
열배나 무서워 보였습니다.
그래, 너는 천주교를 버리지 않기로 작정했단 말이냐?
하고 감사(監司)가 묻기에,
버릴 수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천주란 무엇이냐?
그분은 온 세상의 가장 높으신 임금이요 아버지이십니다. 홀로 천주께서 하늘과 땅과 천신과 사람과 그
외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한편으로는 우리 몸을 살펴보고, 또 한편으로는 이 세상 만물을 볼 적에, 이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안
계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네가 천주를 보았느냐?
안보고서는 믿을 수가 없습니까? 사또께서는 이 진영을 지은 일꾼을 보셨습니까? 우리가 오관(五官)이라
고 부르는 것으로는 소리와 빛깔과 냄새와 맛 같은 것 밖에는 감각할 수 없고, 원리(原理)나 이치(理致)
나 비물질적(非物質的)인 것은 모두 정신으로 구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 감사(監司)는 한참 있다가 말을 이었습니다.
네가 배운 것을 모두 말해 보라!
저는 우리가 지켜야 하는 십계(十誡)와, 피해야 하는 일곱 가지 죄와, 아침저녁으로 천주께 바치는 기도
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벌써 들었다. 하여간 교(敎)를 버리지 않겠느냐?
그것은 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를 섬기지 않는 자식과 임금님을 섬기지 않는 백성은 불효 불충한 자들입
니다. 사람인 이상 어찌 천주를 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죽기가 무섭지 않느냐?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어찌 그 교를 버리지 않는단 말이냐?
이 교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방금 말씀드렸으니, 다시 묻지 마십시오. 그 일로 죽으면 그만입니다.
이러고 나서 나는 다시 옥으로 끌려갔습니다.
㉤ 그 이튿날은 전주(全州), 고산(高山), 곡성(谷城), 동복(同福) 그리고 정읍(井邑) 관장(官長)들이 죽 둘러 앉아,
측근자들을 모두 물리고 나서, 난간 가까이로 바짝 다가오라 하더니, 전주(全州) 관장이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
로 타이르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양반집 자식이니 저 무식한 백성하고는 다르지 않느냐? 거기에다 너같이 생긴 사람이 어찌 그 고약
한 교를 믿겠다고 고집을 부릴 수가 있단 말이냐?
의리에 있어서는 상하의 구별도, 반상(班常)도, 잘나고 못난 얼굴의 구별도 없고, 다만 영혼만이 구별될
수 있고, 또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 천주교에 무슨 의리가 있을 수 있단 말이냐?
그런 다음 동복(同福) 관장이 천주교교리(天主敎敎理)가 어떤 것인지를 말하라고 하므로, 우리 교회의 어떤 책
3장에 걸쳐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것, 즉 참 천주(天主)를 아는 것, 인간(人間)의 본성(本性)을 아는 것, 선을
상주고 악을 벌하는 것 등을 간추려서 말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천주십계(天主十誡)를 설명하노라니까, 전주
관장(全州官長)) 이 가로막으며
그건 모두 쓸데없는 소리다. 영혼도 없고, 천당 지옥도 없고, 천주라는 것도 없는 거야. 그리고 너희들
은 조상께 제(祭)도 드리지 않고, 재물과 아내를 공동으로 소유하니, 세상이 이보다 더 패륜(悖倫)되고
더 불경(不敬)한 도리가 있을 수 있단 말이냐?
하였습니다.
저희들이 제(祭)를 드리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재물과 아내를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말은 사실
이 아닙니다.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것은 쓸 데 없는 노릇이라, 옳은 교에서 금하는 것은 지당한 것입니
다. 사람이 죽을 때에, 착한 사람의 영혼은 천국으로 가고, 악한 사람의 영혼은 지옥으로 갑니다. 거기
에 들어간 다음에는 영영 다시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영혼은 비물질적인 것이니, 물질적
인 것을 어떻게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위패(位牌)로 말씀드리면, 그저 목수가 만든 물건에 지나지 않으니, 그것을 부모처럼 공경하고
자 한다면 욕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모든 이치에 맞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믿는 것입니다. 저희들
이 공동으로 소유한다고 하는 재물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 재물의 상통(相通)이
없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리고 아내에 대해서 저희들에게 뒤집어씌우는 말은, 십
계(十誡)에서 엄격히 금지 되어 있는 것이고, 사람의 모든 자연감정(自然感情)에 배치(背馳)되는 일입니
다. 저희들에게는 남의 아내를 원하는 것조차 금해져 있는데, 어떻게 저희들이 따른다고 하시는 그 원칙
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리고 짐승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것은 터무니없고, 만 번 통탄해 마지않을 무함입니다.
그러자 한 관장(官長)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 모친이 살아 계시고 처자도 있다는데, 지금이라도 한마디만 하면 여기서 놓여나가, 네 모친과 아내
와 아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니, 오죽 기쁜 일이겠느냐?
어머니를 다시 만나러 가려면 배교하라는 말씀이지요? 그러나 천주는 만인의 대왕이시고 아버지시라,
제 어머니도 그분에게로부터 조성함을 받으셨으니, 어찌 피조물(被造物)을 위해 조물주(造物主)를 배
반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한나절을 이야기하고 나서, 다시 옥으로 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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