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레지오 마리애

레지오 단원들의 영성고찰

손드러 2010. 1. 8. 17:29

2008년 레지아 활동방향에 따른

레지오 단원들의 영성 고찰            -교육위원 손형도 안드레아-

<序>

레지오 단원들이 시급하게 가져야 할 레지오의 영성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라는 레지아 단장님의 부탁을 받고 참 쉬운 듯 하면서도 어려운 과제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선 영성이란 무엇인지 알아보면, 가톨릭 영성신학자 조던 오먼(Jordan Aumann)은 ‘영성이란 넓은 의미로 한사람의 행동이 유래된 태도와 정신의 바탕이 되는 종교적 또는 윤리적 가치를 의미 한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레지오 영성’은 ‘예수그리스도적 삶을 살아가신 성모님의 정신’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넓은 의미의 영성을 논하라는 것이 아니라 레지오 단원의 기본적 삶의 영성을 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레지오 영성은 마리아 정신이고, 또 그분을 본받는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지녀야할 가치관이므로 우리단원의 영성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기서는 레지오의 영성적 배경이나 학문적 접근방식이 아닌 레지오 단원들이 지녀야할 실천적 가치관에 관한 요구라고 판단하고 이를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글을 전개해 나가기위해 ‘2008년도 레지오 마리애 활동지침서’를 살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마산교구 레지아의 지침서에 제시된 활동방향은 금년도의 교구 레지아의 근간이 되고, 이를 토대로 레지아 사업이 펼쳐지게 되고, 각급 예하 평의회에서는 이를 참조하여 자체 계획을 수립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생각을 내세우게 되면 자칫 전체의 지침에 혼선을 가져올 우려도 있으므로 <2008년 우리교구 레지오 마리애의 중점 활동 방향>에 의거하여 수반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중점 활동 방향>

금년 2008년도 마산교구 레지아가 추구하려는 활동방향은 ‘단원들의 변화’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금년도 활동지침서 9쪽 ‘레지아 활동방향’에서 3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레지오 정신 회복 운동에서

현재의 레지오가 여러 가지 제반문제를 안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50년 동안 양적 팽창에 자만하고 새로운 환경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점, 그리고 현재의 레지오가 나태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설자의 정신으로,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2)평신도 소명의식 고취에서

2000년 대희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식어가는 활동보고를 통해 우리들의 활동이 소극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매우 우려할 일이라고 진단하고, 레지오 단원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소명의식을 깨닫고 평신도 사도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3)올바른 단원 양성에서

기도, 공부, 활동 이라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교본을 공부하고, 평의회의 교육적 가치에 역점을 두어 자기쇄신에 만전을 기하자는 말로 맺고 있습니다.

위의 3가지 사항을 중심으로 각 항목 별로 실무에서 자주 부딪히고 제기되거나 또는 예상되는 사례에 대한 실천적 영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레지오 정신 회복

1951년 5월 31일 목포시 산정동 성당(현 하롤드 지도신부)에 ‘치명자의 모후’Pr(남성 12명)이 생겨남으로서 이 땅에 레지오 마리애가 들어와 우리교회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영성에 막대한 변화와 영향을 주어왔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입니다.

220년의 우리나라 교회역사 속에서 과연 어떤 평신도 신심단체가 이토록 엄청난 교회의 발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겠는가?

50년 전 12명으로 시작된 레지오 단원이 오늘날에는 60만 명(2003년 5월 18일자 가톨릭 신문 통계 참조)으로 늘어나 명실 공히 교회 최대의 신심단체로 성장했습니다.

레지오가 없는 단위 교회는 없다는 것이 옳은 말일 것입니다.

교회를 신축함에 있어서도 레지오 마리애 주 회합실을 미리 설계에 넣는 것을 보아도(?) 교회에서 레지오 마리애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우리나라 교회는 레지오 마리에의 활성화의 정도에 따라 신자수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한국 레지오 마리애 50년사, 112쪽 참조)

돌이켜보면

12명의 레지오 단원들로 시작된 레지오 마리애가 이처럼 엄청난 발전의 주역으로 자리 잡기 까지 에는 얼마나 많은 선배 단원들이 자기희생과 땀을 흘려 노력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주변을 복음화 시키기 위해 사제를 도와 성모신심을 불태우던 우리 선배 단원들의 모습이 쉽게 떠올려 집니다.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의 현실을 유심히 살펴보면 작은 일에 힘들어하고, 어려운 일을 피하려하는 모습과는 너무도 판이한 모습입니다.

레지오 정신을 회복하자는 것은 당연히 교본 상으로 보면 성모님의 정신에 투철 하자는 것이고, 창설자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입니다.

초창기 우리 선배님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런 레지오 정신을 활동에 투영시켜 왔음을 생각해 보면, 바로 이런 정신이 오늘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1)레지오의 열정에 사로잡혀야 한다.

레지오의 모태는 성모님 정신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께 온전히 사로잡힌 여인이었습니다.

당신의 온몸을 오직 그분만을 위해서 내 던지신 분이셨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천사의 아룀에 순명 하신 것이나, 평생을 예수님을 위해 기도하며, 인내 하신 것, 그 어느 경우에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모습 뿐 만 아니라,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의 극형에 처해지는 절망적이고 가슴 무너지는 순간에는 성자와 하나 되는 부활체험을 하셨습니다.(이제민 신부/ 부활체험(성모님)에서)

‘아들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끌어안았을 때

어머니의 마음은 이미 주검과 하나가 되었으며,

아들은 당신의 시신을 끌어안은 어머니의 마음 안에 이미 부활하여 계셨다.

처음부터 아들 예수의 부활의 원천에서 사셨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신 것이다‘

성모님을 닮고자 하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이와 같은 열정이 온통 사로잡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이런 모습을 닮고자 하신 분이 바로 창설자 프랑크 더프입니다.

평생을 오직 레지오 마리애를 위해서 살다간 프랑크는 성모님께 사로잡힌 분이십니다.

무슨 일이든지 열정에 사로잡히는 자는 성공하게 마련입니다.

오늘날 우리 레지오가 환경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나태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시각에 대한 문제점은 바로 레지오에 대한 열정의 부재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열정을 레지오 단원들에게 불어넣는 방법은 따로 설명되어야 할 내용입니다.

개인의 신앙의 깊이에 따라 레지오의 열정도 다르게 마련일 것입니다.

요즘의 주 회합에서 회합 자체를 빨리 끝내버리려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진지하게 다른 단원으로부터 경험을 전수 받아 선교에 활용하겠다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교회 내에서 대충하려는 모습은 구석구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활동도, 기도도, 청소도, 회의도,..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교회내의 영성을 추락시키는 원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예수님께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스도께 사로잡히지 못한 자가 어찌 성모님께, 더 나아가 레지오에 열정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각 평의회는 단원들이 어떻게 하면 레지오에 열정을 쏟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2)모범을 보여야

우리 교회는 지도자의 모습이 어떠하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본당 사목자가 참된 목자의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면 본당 신자들 역시 그 분의 모습을 따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리더는 대개 후천적으로 길들여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솔선수범입니다.

솔선수범 정신은 어쩌면 우리 레지오 정신에 꼭 부합하는 덕목입니다.

레지오 신임단원은 기존단원의 모습을 보고 따라 배우게 되어있는 도제 제도로 이어집니다.

기존의 단원들이 활동보고를 부실하게 하고, 기도를 빨리 해치우려하고, 교본연구도 충실히 하지 않고, 2차 주회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자연히 새로 충원된 단원은 그 모습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하고자 하는 단원들에게 ‘너무 깊이 들어가면 힘들어, 그러니 적당히 해’와 같은 언질을 주는 경우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자신이 선배로부터 그런 식으로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레지오 마리애를 친목 단체로 전락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우선 쁘레시디움 4간부들이 평단원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출석에 빠짐이 없어야 할 것이고, 남보다 더 많은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는 혼자 하는 것이어서 저 사람이 기도를 열심히 하는지 어떤지는 남들이 모르는 것 같지만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평의회는 간부들을 훈련시키는 교육의 장소지만 실제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은 쁘레시디움 입니다.

쁘레시디움 단장은 바로 최 일선 교육현장에 있는 존재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본에 ‘무능한 장교가 있을 뿐, 무능한 사병은 없다’(교본 제 14장 13항)는 가르침은 솔선수범이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2.소명 의식을 가져야

이 세상 모래알만큼 많은 사람들 가운데 보잘 것 없는 나를 당신의 자녀로 불러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르는 길을 알려 주신 것만으로도 창조주 하느님께 감사할 일인데, 거기에다 당신의 구원사업의 협조자로 삼으시고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는 개인의 구원도 귀하게 여기시지만 아울러 많은 사람들, 친구가, 이웃이, 가족이, 주변 환경이 모두 함께 변화되어 구원 받으시기를 더 원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나름대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저마다 특수한 부르심에 응답하신 분들이며, 우리들은 평신도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사제나 수도자의 관여가 제한된 세상을 교회와 연결시키는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 평신도입니다.

그래서 평신도들도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 왕직, 예언직, 사제직을 수행하도록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이를 기록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공의회 문헌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제1장 2항)

이 3가지 직분은 서로 관계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따로 떼서 논할 수는 없습니다만, 우리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눈여겨 봐야할 것은 바로 예언직입니다.

기쁜 소식을 각자의 마음과 머릿속에 담아두었다가 이를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 예언직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유언을 실천에 옮기는 일에 선봉이 되겠다고 나선 우리들의 목적이 복음전파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왜 나를 레지오 단원으로 불러주셨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신앙 속에서 내게 일어나거나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영적인 눈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 성인은 자신의 소명의식을 성모 신심을 온 세상에 퍼뜨리는데서 찾았습니다.

그분의 소명의식은 결국 프랑크 더프를 통하여 레지오 마리애라는 큰 나무로 자라나게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이 나무의 밑거름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이를 수확하는 일꾼으로서의 소명의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소명의식을 가질 때 내가 이 자리에 서있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고 따라서 나의 행동에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1)투철한 성모공경 정신으로 무장해야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한 나라의 군인은 자기 나라에 대한 애국심으로 자신을 기꺼이 나라를 위해 바치겠다는 각오를 가지게 됩니다.

성모님의 군사가 성모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 마치 군인이 애국심 없이 나라를 지키는 꼴이 됩니다.

우리교회는 성모님을 공경하는 전통이 있기에 더욱 풍성하고 보다 확고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보다도 성모님께서 우리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시니 참으로 우리들은 행복하다 하겠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성모님에 관한 성경의 기록이 빈약하다는 이유로 성모공경을 거부하는 사람들(주로 개신교)이 있습니다만, 성경말씀은 사가들이 예수님께 초점을 두고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쓴 것이므로 성모님에 관한 언급은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성경에 언급된 것만으로도 그분의 모습과 일생을 충분히 그려낼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오히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여백으로 계심으로서 더욱 그분의 존재가치가 빛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성모님과 예수님은 가장 가까이서 당신들의 마음을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성모님께 향하여 다가갈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서 체험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 성인은 :

‘신비체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면, 그분의 지체들도 마땅히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야 할 것이다.’(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1, 32항)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우리는 한 포도나무의 가지요,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어머니를 공경하지 않는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바로 그분의 정신이 레지오 정신이요.

그분의 행동이 레지오의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앞서도 설명 드렸지만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일에 대해서 일일이 설명하실 필요가 없는 존재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레지오에는 성모님께 대한 확고한 공경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합니다.

이런 현상들이 결국 레지오를 인간적인 관계의 집단으로 만들어가는 원인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떤 단체에 들어가게 되면 우선 그 단체의 목표와 주된 정신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좋지만 설령 그렇지 못해서 먼저 알고 들어가지는 않았더라도 후에라도 이를 확인하고 그를 위해 자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Pr.단원들 가운데는 그저 타인의 권유에 의해서 입단하고, 별 생각없이 그 집단에 적당히 휩싸이는 모습입니다.

이런 정신에서 투철한 목적의식과 활동의식이 나올 리 없습니다.

각 개인의 믿음의 차이에서 그럴 수도 있다면 해당 평의회가 이를 교육시킬 의무를 지니게 됩니다.

그러므로 평의회는 단원들의 교육, 특히 성모 신심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2)선교 중심의 활동

레지오 마리애로서 소명을 받은 우리들이 먼저 해야할 일은 선교 활동 입니다.앞서 말씀드린 바 있지만 초창기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활동 보고는 90%정도가 선교 활동에 관한 보고로 채워졌다고 합니다.(한국 레지오 마리애 50년사 /첫 프레시디움 활동 편 참조)

그 분들은 마르코 복음 16,15절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여라’는 주님의 지상 마지막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기위해 노력하신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레지오 초창기(1950년대 후반 - 60년대 초반)에는 복음화 율이 오늘날 보다 훨씬 더 낮아서 대상자 수가 주변에 더 많았겠지만 언제나 활동의 어려움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50년사를 보면 목포 산정동 본당에 3개의 쁘레시디움이 생기고 난 후 급속하게 주변으로 레지오가 전파되었고, 레지오가 있는 본당과 없는 본당 간의 신자수가 크게 차이를 보였다고 합니다.

당시 레지오는 본당 사제를 도와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선교에 누구보다도 열정을 가지고 앞장섰기 때문에 주회에서의 보고는 주로 활동보고로 채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레지오는 선교 활동보다는 오히려 개인 신심활동(묵주기도, 연도 등)과 교회협조(본당 행사, 기타 등)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레지아 사도직 활동 지침서에서 간부 및 단원의식 조사 중 p.52의 <구체적 활동내용>을 보면 비신자 입교권면이 12.2%, 쉬는교우 회두 15.6%, 본당협조 53.4%를 보더라도 짐작이 가능합니다.

물론 오늘날은 과거에 비해 사회적 여건상으로 훨씬 폐쇄적 환경과 다 분화된 엄격한 직장 여건 등으로 사도직 활동에 할애하는 시간이 적다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는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비율임은 너무도 자명합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새로 입단한 단원들은 사도직 활동과는 먼 보고에 익숙하게 될 것입니다.

교본은(P.105)'레지오는 활동이 따르지 않는 사도 양성이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평신도 사도직의 모든 일들이 실질적인 활동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쁘레시디움 단장은 활동 중심의 보고가 적은 단원들에게 미리 준비된 활동 배당을 주어서 직접 활동에로의 참여를 유도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쁘레시디움에서의 활동 보고는 선배 단원들이 사도직 활동의 결과를 실제로 모범을 보여 줌으로서 쁘레시디움 본래의 의도인 도제제도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3.내실 있는 단원 양성

레지오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관건은 결국 레지오 정신이 투철한 단원을 확보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이면 누구나 레지오 단원이 될 자격이 있으므로, 새 단원을 선택적으로 뽑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새로 입단한 단원이 소속된 쁘레시디움이 도제제도에 능한 단원으로 구성되어있다면 염려할 것이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기존단원을 포함한 모든 단원의 교육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단원의무 교육이나, 레지오 학교, 레지오 특강 등을 통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류의 교육은 어디까지나 보조 교육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결국 레지오의 교육은 쁘레시디움에서 모범적인 단원에 의한 도제교육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교본/레지오 사도직/ 제7항)

그러므로 레지아의 간부 직책교육을 강화시켜서 단장과 부단장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이것이 쁘레시디움 내에서 실천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미 언급된 교본연구를 보다 강화하고 제반 교육을 더욱 철저히 함으로써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내실 있는 단원 양성을 위한 레지오 상급 평의회가 기울이는 노력의 일환으로 긍정적 효과를 기대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 결과는 실제 손발이 되어 움직이는 쁘레시디움 활동 단원들의 마음가짐과 노력여하에 달려있다 하겠습니다.

1)끊임없는 자기 쇄신

*기도를 통하여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복음화 활동에 매진하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를 생활화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없는 활동은 제대로 된 활동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많이 개입된 활동은 언제나 불안하며 깨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하여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활동은 결코 깨어지지 않습니다.

설렁 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주님의 뜻이지 나의 뜻은 아닌 것입니다.

묵주기도를 제외하고 기도를 양으로 계측화 하기는 어렵겠지만 대체로 교회 내 모든 구성원들 가운데서 무거운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기도에 매달려야 합니다.

늘 기도하는 모습의 사제가 있는 성당 사람들은 그 사제의 모습대로 열심히 기도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다음으로는 본당 회장님이 많은 기도해야 합니다.

본당의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잘 헤쳐갈수 있는 지혜를 하느님께로부터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내려가면 레지오의 꽃인 쁘레시디움에서는 단장이 더 많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과 단원들의 건강과 원활한 활동을 위한 기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단장이 이끄는 레지오 단원들은 아무리 개성이 강해도 강한 흡수력 때문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기도에 매달리는 것은 어쩌면 우리자신의 모난 모습을 스스로 깎고자 하는 의지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는 산이나 들에 흩어져 있는 모난 돌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런 돌들은 모두 한결같이 모가 나있고 다듬어지지 않는 상태로 놓여있습니다.

이런 돌들이 비바람에 휩쓸려서 강으로 떠밀려 내려와 다른 돌들과 서로 부딪히게 되면 서로 깎이고 다듬어져서 동글동글한 돌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나 강의 돌멩이가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굴러가지 못합니다.

큰 물줄기의 흐름이나 자연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사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절대 타자이신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이런 하느님의 도우심은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도로 살아가는 존재인 우리들은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 그리고 한계를 인식하고, 그 부분을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께 채워주시기를 간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을 충실히 하게 되면 자연히 자신의 모난 부분들이 점차 깎여나가게 될 것입니다.

*공부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지키고 따라야할 최고의 지침서는 물론 성경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행동규범이 나열되어 있고 구원의 비결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동시에 레지오 단원에게는 따라야 할 또 다른 지침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레지오 마리애 교본’입니다.

성경에서 제시한 구원의 길의 큰 틀 속에서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접근방식 가운데 하나인 성모님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복음화에 앞장서자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인 ‘레지오 마리애’의 지침서인 것입니다.

설립 100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레지오 마리애가 흔들림 없이 이렇게 큰 역할을 하기까지는 성모님의 도우심과 교본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레지오 교본은 기본적으로 성서를 기초로 하여, 성모님께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교본을 열심히 공부하고 이를 행동의 보조 지침으로 삼는 것은 그리스도 정신에 꼭 부합하는 것입니다.

교본상의 레지오 마리애의 행동지침은 이 땅에 그리스도 왕국을 앞당기는 복음화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화 활동의 원리를 모르고서 활동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다른 단원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을 모방할 수도 있지만 활동 이면의 영적인 가르침 까지는 아닙니다.

교본은 행동단원의 활동의 바탕이 되는 정신적 영역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교본의 정신과 그 정신의 결과로 드러나는 활동은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게 해주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정신이 흔들림이 없게 하는 안전장치인 것입니다.

레지오 단원이 매주 교본연구를 하는 것은 자신의 활동이 그리스도적인지 아닌지, 혹은 성모님의 정신에 맞는지를 구분하는 지침이 되는 것이므로 모름지기 레지오 단원들은 교본 연구를 충실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선 레지오에서는 교본공부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쁘다거나 잊었다는 핑계로 차주로 미루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결국 교본 공부는 올바른 레지오 단원이 되고자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2)단원간의 화목(和睦)

레지오에서 단원들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단원간의 화목입니다.

인간은 모난 개성을 끊임없이 깎는 과정을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개성과 품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역시 다양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예수님의 지체로 영적인 한 형제 자매로 불림을 받았지만 다 거룩한 품성과 행동을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우리들은 인간적인 약점을 지닌 그대로의 모습대로 하느님의 불림을 받아 그분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느님이 받아들이신 모든 사람들을 우리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 안에 한 형제 된 우리들은 서로 미워할 수도 배척 할 수도 없는 운명적 존재로 만난 것입니다.

좋은 사람들 좋아하는 것은 누구나 쉽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하기에 어려운 사람들을 가까이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의 삶을 통하여 그런 우리들의 생각을 버릴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상호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런 관계론 적 존재인 인간은 필연코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인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일선 레지오에서는 인간관계로 인하여 속상해 하며 괴로워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결국 신심단체인 레지오 마리애도 사람의 집단이므로 다소 이런 면을 각오하고 참아내야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거나 심하면 대면을 피하는 심각한 상태로 전이되기도 합니다.

이럴 경우에는 대체로 쁘레시디움 단장이 구성원들의 개성을 파악하여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하는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쁘레시디움 단원 간에는 식구와 같은 소속감과 유대감이 매우 필요합니다.

일선에서 생활하다보면

단장과 단원들 간의 불화를 간혹 볼 수 있는데, 그럴 경우는 그런 단원이 이전에 단장 직을 역임하였거나 또 레지오에 관해서 어느 정도 경험과 경륜이 쌓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신임단장이 간혹 실수를 하거나 서투르게 주 회합을 이끌면 바로 그 자리서 핀잔을 주거나 바로 잡으려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단장은 자신의 권위를 의식하게 되고 간섭하는 자는 단장이 자신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은 인내하며 사후에 조언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상대방을 내방식대로 끼워 맞추는 교만을 없애야 하는데, 이런 경우는 참으로 난감해서 해결책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업무상의 잘못은 곧 수정할 수 있지만 개인의 자질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은 쉽게 고쳐지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쁘레시디움에서 사소한 말다툼으로 레지오를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냉담하는 사람들도 있는 실정입니다.

나에게 걸림돌이 되는 분이 있으면 그분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단순한 가르침을 깊이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성격차로 생겨나는 불화에서 중재의 효력이 없을 때는 평소에 친근한 지인이 활동하는 타 쁘레시디움으로 전출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성모님의 겸손의 덕을 본받도록 평의회가 교육하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4.발전적 제언

1)양적 팽창 재고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제2 물결문명이 시작되고 상품의 대량생산은 오늘날의 사회구조를 급격히 변화시켰습니다.

기계화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짐으로서 모든 것이 수치화되고 그것으로 능력과 세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습니다.

사람도 인력자원으로 보고 그런 수치의 요인으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겉으로 드러난 여러 가지 수치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절대 판단 기준은 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가톨릭 교회의 통계를 보면 전체 인구의 약 9%정도(약 500만명)가 가톨릭 신자입니다.

그 가운데 약 30%정도가 수계신자입니다.

나머지는 어떤 형태든지 쉬는 자라는 결론입니다.

물론 우리 마산교구는 주일미사에 참여하는 신자가 전체 15여만명 중 20%정도입니다.(2006년 마산교구 통계)

이상한 것은 해마다 각 본당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세식을 통하여 새 신자가 되는데 성당의 좌석은 언제나 일정한 비율로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거의 해마다 되풀이 되는데, 어떻게 보면 쉬는 이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법 합니다.

예비신자 환영식 때 본당 신부님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숫자에 신경을 쓴 결과가 이와 같은 현상을 낳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우리교구 레지오 마리애는 눈부신 성장을 해왔습니다.

20여 년 전 레지아 설립당시 꼬미시움 2개,꾸리아 50개, 쁘레시디움 832개, 행동단원 8,337명에서

2006년 12월 현재 꼬미시움 18개, 꾸리아 85개, 쁘레시디움 1,408개, 총단원(협조단원 포함) 18,743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 통계를 보면 단원 수는 우리 교구 전 신자의 약 12%를 웃돌고 있습니다.

다시 이를 주일 미사 참여 신자에 적용시켜보면(주일 미사 참여 신자를 20%, 약 31,000명 이라고 가정하고 : 2006년 마산교구 통계) 약 60.5%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수계신자(약 83,000여명) 대비 약 23%에 이릅니다.

실제 보고된 수치는 농촌지역 등을 감안하면 등록된 수와 실제 활동하는 수치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레지오는 교구를 떠 받히고 있는 기둥역할을 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하겠습니다.

이런 발전을 이루기까지 땀 흘린 선배 간부 및 단원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내야 합니다.

이런 통계를 우리들의 마음을 뿌듯하게 해주지만 또 한편으로 이런 양적 팽창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가 따른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내용의 일부가 앞서 제가 말씀드린 내용들입니다.

단원들의 노령화에 대비해서 젊은 피를 계속 필요한 수 많큼 확보해야 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 확보된 단원들을 어떻게 잃지 않고 정예화 시키느냐도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結> 변화의 몸부림

한국 레지오 마리애 50년사 기고문에서 최 경용 신부님과 대구 대교구 박 성대 신부님은 레지오 마리애 현행 문제가 될법한 내용을 지적하고 나름대로 해결을 제시한 글이므로 한번쯤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읽고 생각해 봐야 할 부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저런 여러 가지 문제점도 있을 수 있고,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모든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변화는 나 부터’입니다.

내가 변하지 않고 남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레지오 마리애의 교본상이나 제도상의 문제점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사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조급한 마음이 아닌 느긋하게 참고 기다리면서 오직 현재 우리에게 부딪힌 현실을 멋있게 타개해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더욱 중요한 것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에 있음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나는 잘했는데 남이 잘못하여 어려움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 책임은 결국 나에게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환경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얼마나 했느냐를 하느님께서는 묻고 계십니다.

나만 잘하겠다는 생각만을 하지 말고 더불어 함께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끊임없이 기도하며, 우리들의 할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변화의 몸부림입니다.

                    <2008년 11월 말 마산교구 레지아 심포지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