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생님의 생전 마지막 유언
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놓은 대로 부탁 드립니다. 제 시체는 아랫마을 이태희 군에게 맡겨 주십시오. 화장해서 해찬이와 함께 뒷 산에 뿌려 달라고 해 주십시오. 지금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3월 12일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퉁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습니다. 지난 날에도 가끔 피고물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릅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됩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재작년 어린이날 몇 자 적어 놓은 글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2007년 3월 31일 오후 6시 10분
권정생
2. 돌아가시기 2년 전에 미리 작성하신 유언장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 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 다녀 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 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짐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 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 저기 뿌려 주기 바란다.
유언장 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 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 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 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0일 쓴 사람 권정생
주민등록번호 370818-*******
주소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7
아동문학가. 《강아지 똥》, 《몽실언니》 등의 작품과 삶에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 본관 안동 국적 한국 활동분야 아동문학 출생지 일본 도쿄 주요수상 아동문학상(1969), 한국아동문학상(1975) 주요저서 《강아지똥》(1973), 《무명저고리와 엄마》(1973) 주요작품 《몽실언니》(1984), 《한티재하늘》(1998)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외가가 있는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했지만 빈곤으로 가족들과 헤어져 어렸을 때부터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와 가게의 점원 등을 하였다. 결핵에 걸려 늑막염, 폐결핵, 방광결핵, 신장결핵 등을 앓으며 대구, 김천, 상주, 문경을 떠돌며 걸식을 하다가, 1967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정착하여 그 마을의 교회 문간방에서 살며 종지기가 되었다.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 똥》을 발표하여 월간 《기독교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동화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1980년대 초 교회 뒤 빌뱅이언덕 밑에 작은 흙집을 짓고 살며 작품을 쓰고 있다. 2007년 5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과 작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북녘 형제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깜둥바가지, 벙어리, 바보,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강아지 똥 등 그가 그려내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힘없고 약하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죽여 남을 살려냄으로써 결국 자신이 영원히 사는 그리스도적인 삶을 살아간다. 저서로는 동화에 《강아지 똥》 《사과나무밭 달님》 《하느님의 눈물》 《몽실언니》 《점득이네》 《밥데기 죽데기》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한티재하늘》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무명저고리와 엄마》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깜둥바가지 아줌마》 등과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수필집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우리들의 하느님》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