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 단성설을 단죄하는 칼체돈공의회를 소집한 교황 레오 1세.
4∼5세기 교회 신학자들 사이의 논쟁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가”라는 문제였다. 당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함께 존재하는 동시에 두 본성이 한 위격 안에서 온전한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교의를 공식 선포했지만, 이에 찬성하지 않는 이들의 주장은 끊이질 않았다.
교회와 극단적인 대립을 줄곧 견지한 이론은 이른바 ‘그리스도 단성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오로지 하나의 성(性), 즉 신성(神性)만이 있다는 주장으로, 이를 체계화해 교회에 정면을 맞선 장본인은 에우티케스(?∼454)다.
콘스탄티노플(현 터키의 이스탄불) 근처의 수도원장이었던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만을 강조해 에페소 공의회에서 단죄되었던 네스토리우스파의 이론에 강력히 반대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쳐 그는 네스토리우스파와는 정반대로 그리스도의 신성만을 강조해 교회 분열의 주역이 된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하는 신성과 인성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하느님에 의해 인간으로 태어날 당시 예수 안에서 결합되어 있던 신성과 인성이 결합 후에는 “마치 바다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다에 녹아 버리듯” 신성에 흡수되어, 결국 신성만 남는다고 주장했다.
이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무시하고 나아가 인간 예수를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허상으로 만들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이론이었다. 교회는 이를 묵과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에우티케스의 단성설 외에도 그리스도의 인성을 경시한 나머지 예수가 당한 수난의 고통도 가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가현설까지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황 레오 1세(재위 440∼461)는 끊임없이 교회를 위협하는 이단을 단죄하기 위해 451년 칼체돈(오늘날 터키의 카디쾨이)에서 제4차 세계 공의회를 소집한다. 에페소에서 제3차 세계 공의회가 열린 지 20년만의 일이다.
여기서 공의회 교부들은 “하나요 동일한 그리스도는 본성이 둘이면서도 뒤섞이거나 뒤바뀌거나 나뉘어지거나 갈라지지 않는 분으로 고백해야 한다. 이 일치를 빙자하여 본성들간의 구별이 말살되어서는 아니 된다. 오히려 이 두 본성의 독특한 고유성이 고스란히 보존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믿을 교의로 공식 선포했다.
이는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의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있기에 하느님 아버지는 물론 인간과 본질상 동일하다고 천명함으로써 네스토리우스파와 에우티케스의 단성 이론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그러나 칼체돈 공의회의 명확한 결정에도 불구하고 공의회 이후 단성설적인 이론은 동방 교회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며 교회 분열을 위협하는 불씨로 남는다. 대표적인 것이 단의설(單意說)과 단활설(單活說)이다. 이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너무나 긴밀히 결합되어 서로 조화를 이룬 나머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단 하나의 신인적 활력과 단 하나의 의지만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이론도 결국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680년)와 라테란 공의회(1123년)에서 단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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