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단상
완연한 봄이다.
식탁 쪽 직사각형 유리창은 한 폭의 아름다운 봄을 안겨준다. 하루가 다르게 푸름을 더해가는 나무사이로 하얀 목련이 두드러지게 부풀어 올랐다.
모처럼 모든 창문을 열고 집안의 먼지를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나서 오랜만에 오디오를 켜본다. 늘 서브로 FM만 들어왔는데 오늘 같은 날은 진공관 앰프와 메인 스피커로 이무지치 연주로 비발디 사계 중 봄을 들어본다. 과일도 제철의 과일이 제 맛이듯 음악도 이런 초봄에는 딱 어울리는 음악이다. 나긋하고 상큼한 바이올린 선율이 온 집안을 휘감는다. 이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소리가 기계를 통해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소리를 통속에 집어넣어 놓은 듯한 이런 기술을 알아내고 만든 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음악으로 한껏 들뜬 마음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작은방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체중계를 발견하고 위에 살며시 발을 올려놓는다. 평소보다 약2Kg 쳐진 눈금에 바늘이 멈춘다. 내 마음이 이리 가벼운 것은 결국 내 체중의 영향도 있나보다.
오늘은 사순이 시작된 지 34일 째 되는 날이다.
이번 사순은 몇 가지 결심을 했다. 첫째 술을 먹지 않겠다는 것과, 육고기를 안 먹겠다는 것, 불가피한 것을 제외하고 회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 TV시청을 줄이고 대신에 성서를 쓴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결심이 잘 유지되어 체중도 조절되고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얼굴이 안 좋은데 어디 아픈 데가 없는지 묻는다. 다름 사람들에게서 얼굴이 수척하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제대로 사순을 지내고 있다는 증명을 받은 셈이다. 소식하고 매일 걷기 열심히 하는데 얼굴에 기름기가 안 빠지고 베기겠는가. ‘요즘 얼굴 좋다’는 치사 따위는 안 들어야 내 건강이 좋다는 것임을 명심해야겠다.
문제는 꼭 이런 사순기간에만 이러는 것이 문제다. 일 년 내내 이런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장담하지 못할 것 같다. 어찌 인간이 기계처럼 일정한 톱니바퀴에 맞물려 살아갈 수 있을까. 가끔은 흐트러질 때도 있어야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내 마음 구석에는 사순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도 솔직히 있다.
CD음반으로 들리는 모짤트 피아노 소나타 570번 - 프리드리히 굴다의 연주가 연잎위로 구르는 물방울처럼 튀고 떨어지는데 갑자기 몇 줄을 건너뛰어 연결을 뒤튼다. 그래, 정교한 디지털 기계도 가끔씩 저러는데 사람인들 오죽하랴. 모짤트 피아노 소나타 570번 이것 역시 봄에 알맞은 아름다운 선율이다. 전에는 못 느끼던 감성이 봄이 되어 솟아나는 것일까. 봄은 인간의 오감을 매우 민감하게 만드는 계절인가 보다.
오늘은 94세로 일생을 마감한 한 자매님의 입관예절이 있는 날이다.
천수를 다해 사시다가 촛불처럼 꺼져간 자매님의 죽음이 크게 슬프지 않는 것은 이 아름다운 봄날에 온갖 만물의 화사한 분위기속에서 새로운 생명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홀연히 자신을 떨군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봄과 음악과 죽음이 한꺼번에 뒤섞여서 행복감에 젖어 이글을 쓴다.
2013. 3. 19 손드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