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한국 천주교회사

[스크랩] 조선교구의 설정 -8

손드러 2010. 1. 19. 09:09

⑦ 그러니까 브뤼기에르(Bruguiere) 신부는 조선(朝鮮)사람들을 변호(辯護)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기 자신(自身)을 이 위험(危險)한 포교지방(布敎地方)으로 보내달라고, 예수그리스도의 대리자(代理者)에게 청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너무 이렇게  앞으로 나아간 것에 가책(苛責)을 느껴, 교황성하(敎皇聖下)께 두 번째 편지(便紙)를 올렸는데, 거기에는 이런 구절(句節)이 있었다.

  󰡒저는 조선교회에 대하여 전과 다름없는 심경을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성령(聖靈)의 감도(感導)를 받지 않은 소원(所願)이 있고, 사람의 눈에 바른 것으로 보이나 실상은 죽음으로 이끌어 가는 길도 있나이다. 성하(聖下)께서는󰡐당신들은 가서 모든 사람을 가르치시오󰡑하고 말씀하신 분의 대리자(代理者)가 되셨으니, 성하(聖下)께서 저의 성소(聖召)를 검토하시기를 간청하나이다. 그리하여 저의 성소(聖召)를 승인하시면, 저에게 출발명령(出發命令)을 내리시옵소서. 성하(聖下)의 의향을 알게 될 때까지는, 제가 지금 있는 포교지(布敎地)에 언제까지나 남아 있어야 할 사람 모양으로, 여기에서 저의 직무(職務)를 채우기에 힘쓸 것이오며, 그러면서도 당장이라도 이 곳을 떠나야 할 사람 모양으로 만반의 준비(準備)를 갖추고 있겠나이다.󰡓


⑧ 브뤼기에르(Bruguiere) 신부의 이런 교섭(交涉)은 플로랑(Florent) 주교(主敎)의 승인(承認)을 받았다. 바로 얼마 전에 그를 자기의 보좌주교(補佐主敎)로 선택하고는

  󰡒참으로 말할 수 없이 기쁘다. 나는 죽을 때에 보좌주교를 갖고 있을 것이로다.󰡓

   하고 부르짖었던 이 공경(恭敬)하올 노인이 용감(勇敢)하게 그의 출발(出發)에 동의(同意)한 것이었다.

     이 문제(問題)에 대하여 플로랑(Florent) 주교(主敎)는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신학교 지도자(指導者)들에게 아래와 같은 글을 써 보냈다.


  『브뤼기에르(Bruguiere) 신부는 만일 필요하다면 가엾은 조선(朝鮮) 사람들을 구원하러 가겠노라고 진심으로 자진(自進)하여 나섰고, 나도 그것이 주님의 더 큰 영광(榮光)을 위하는 길이라면, 그를 기꺼이 내놓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을 듣고 아마 몹시 놀라서, 교구장(敎區長)과 그의 보좌주교(補佐主敎)가 머리가 돌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우리들의 머리는 아직 성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이게 무슨 짓이람! 후계자를 달라고 해서 얻게 되니까, 이내 놓아주다니!󰡑하고들 말씀하시겠지요. 그러나 천주께서 나보다 덜 너그러우실까봐 겁낼 수가 있겠습니까?

      포교성성(布敎聖省)에서 한 것처럼, 나도 여러분이 내세우신 지혜(智慧)롭고 현명(賢明)한 이유(理由)를 찬성합니다. 그러나 눈앞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일들을 깊이 생각해 보면, 여러분이 내세우는 이유(理由)가 어느 정도 힘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일꾼이 없어서 모든 것이 끝장이 난 것 같아 보이고, 우리 포교지(布敎地)들이 소멸(消滅)되어 가는 듯 하던 때에, 천주의 섭리(攝理)가 얼마나 기묘(奇 妙)하게 우리를 구하여 주셨는지를 여러분은 아시지요? 그것은 기적(奇蹟)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주의 큰 영광(榮光)이 관계되는 일에 천주의 섭리(攝理)가 우리를 구원(救援)하여 주시리라고 믿지 않는 것은 그분을 욕되게 하 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많은 영혼(靈魂)의 구원(救援)이란 것은 우리를 위하여 천주의 자비(慈悲)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 있는 명목(名目)이 될 것입니다. 나는 가엾은 조선교우(朝鮮敎友)들의 소원(所願)을 들어 주시고, 그들에게 참으로 사도적(使徒的)인 많은 선교사(宣敎師)를 보내 주시기를 주님께 간구하는 바입니다.』


⑨ 교황(敎皇)의 결정(決定)을 기다리는 동안 브뤼기에르(Bruguiere) 신부는 샴 왕국(王國)에서 일을 계속하였다. 그는 1829년 성 베드로 바오로 사도축일(使徒祝日)에 방콕에서 주교품(主敎品)에 올랐는데, 이 은총(恩寵)의 증가는 그의 열심(熱心)을 더욱 크게 할 뿐이었다.

     뿔로 삐낭(Poulo-Pinang) 섬에 파견되어, 거기에서 자리를 잡고 지칠 줄 모르는 열정(熱情)으로 성무(聖務)를 집행(執行)하여, 1년도 못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죄인(罪人)들을 어지러운 생활에서 많이 건져 주었을 뿐만 아니라, 바당(Badang)과 니아스(Nias)와, 중요성 있는 싱가포르 섬에 신부(神父)들을 모시게 하는 일에도 성공(成功)하였다.

     심신(心身)을 다하여 성무(聖務)를 집행하면서도,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主敎)는 조선(朝鮮)을 맡게 되리라는 은근한 희망(希望)을 여전히 가슴속 깊이 품고 있었는데, 이 포교지(布敎地)가 다른 수도회(修道會)에 맡겨졌다는 편지를 받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소원(所願)이 일부분 이루어진 것에 대해 천주께 감사(感謝)를 드리고, 이 불행(不幸)하고 관심(關心)을 끄는 포교지에 파견(派遣)되게 된 사람을 부러워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일이 성공(成功)하기를 기도(祈禱)하였다.

     그러나 이 소식(消息)은 근거(根據)가 없는 것이었다. 1831년 9월 9일자 친서(親書)로, 교황(敎皇)은 조선(朝鮮)을 교구(敎區)로 설정(設定)하였고, 같은 날짜로 되어있는 또 하나의 친서(親書)로 바로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主敎)를 이 포교지(布敎地)의 초대 교구장(初代敎區長)으로 임명(任命)하였던 것이다.



출처 : 가톨릭 교리신학원 총동문회
글쓴이 : 가브리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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