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한국 천주교회사

[스크랩] 신유박해 후기의 양상 1-4

손드러 2010. 1. 18. 23:01
 

2. 강완숙(姜完淑) 골룸바의 순교 - 아! 너무도 아름다운 영혼이여!


① 한 달 후, 5월 23일(7월 3일) 새 순교자 9명(강완숙(姜完淑), 최인철(崔仁喆), 김     현우(金顯禹), 이현(李鉉), 홍정호(洪正浩), 김연이(金連伊), 강경복(姜景福), 한신애(韓信愛), 문영인(文榮仁) 등)이 서소문(西小門) 밖으로 끌려가 참수(斬首)되었다. 이 순교자(순교자) 중 5명은 양반집 부인(婦人)들로서, 조선의 국법(國法)을  위반(違反)해가며 처형(處刑)한 것이니, 이것은 천주교의 적들의 격노(激怒)로 밖에는 설명될 수 없다.

     이 영광(영광)스러운 무리의 첫 머리에, 신부(神父)를 헌신적(獻身的)으로 보좌     해드린 강완숙(姜完淑) 골룸바가 있는데, 그에 대하여는 이미 위에서 말한 바 있 다.


② 그녀가 잡힌 후, 관리(官吏)들은 그녀로부터 신부(神父)가 숨어 있는 곳을 알아 내려고, 여섯 차례나 무서운 주리를 틀었다. 그러나 그러한 혹형(酷刑) 가운데서도 강완숙(姜完淑) 골룸바는 입을 열지 않고, 마치 감각(感覺)이 없는 사람 같아,  형리(刑吏)들이 자기들끼리

  ꡒ저건 여자가 아니고 귀신이다.ꡓ

   하고 말할 지경이었다.

     조금이라도 나약(懦弱)한 표를 보이기는 고사하고, 옥중의 관리(官吏)들 앞에서조차, 그의 사도직(使徒職)을 계속하여, 천주교(天主敎)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임을 끊임없이 주장(主張)하며, 공자(孔子)와 그 밖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哲學者)들의 글에서 증거(證據)를 끌어내어, 자기의 말을 뒷받침 하였다.


③ 관리(官吏)들도 감탄(感歎)하여 강완숙(姜完淑) 골룸바를「유식한 여인네, 비길데 없는 여인」이라는 말로 그녀를 표현(表現)하면서 기가 막힌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비상(非常)한 놀라움으로 생기는 망연자실(茫然自失)을 뜻하는 조선식(朝鮮式) 표현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더욱 더 그녀를 배교(背敎)시키려고 더욱 열중하여, 생각할 수 있는 방법(方法)을 총동원하여 가장 잔인(殘忍)한 형벌(刑罰)을 그녀에게 가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그녀의 그 희생적(犧牲的)인 초자연적 인내(超自然的 忍耐)에 지고 말았다.


④ 강완숙(姜完淑) 골룸바의 신앙은 그의 모성애(母性愛)도 마찬가지로 영광스럽게  이겼다. 그녀와 같이 잡혔으나 다른 옥에 갇혀 있던 전실(前室) 아들 홍필주(洪弼周) 필립보는, 형벌(刑罰) 중에 마음이 약해지는 것 같았다.

     강완숙(姜完淑) 골룸바는 그 말을 듣고서, 그가 옥에서 법정(法廷)으로 가던 날 먼발치로 아들을 보며, 그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ꡒ예수께서 네 머리 위에서 너를 보고 계신다. 네가 그와 같이 눈이 어두워, 스스로 멸망할 수 있느냐? 내 아들아, 용기를 내고 천당복(天堂福)을 생각하라.ꡓ

   이 용감(勇敢)한 격려가 젊은이의 영혼(靈魂)을 구하였으니, 그는 이 말로써  힘을 얻어, 몇 달 후에 순교(殉敎)의 영관(榮冠)을 받았다.


⑤ 강완숙(姜完淑) 골룸바는 옥에서 주문모(周文謨) 신부(神父)가 죽었다는 소식(消息)을 들었다. 그때 그녀는 자기의 옷자락을 찢어서, 거기에 선교사(宣敎師)의 사도적 업적(使徒的業積)을 썼다.

     한 성인(聖人)을 그렇게도 잘 알던 성녀(聖女)에 의해서 옥에서 씌어진, 이 성인(聖人)의 행적(行蹟)은, 불행하게도 그 비단 조각을 맡았던 여교우(女敎友)의 소홀로 없어지고 말았다.

     강완숙(姜完淑) 골룸바와 함께 갇혀 있던 동료(同僚)들의 열심은, 그 몹쓸 옥(獄)을 기도(祈禱)의 처소(處所)로 바꾸어 놓았었다. 신심행사(信心行事)에 충실(忠實)하면서, 그들은 서로를 위로(慰勞)하고 격려(激勵)하며, 그들의 천상배필(天上配匹)에 합당하게 되려는 생각뿐이었다.

     천상배필(天上配匹)은 그의 갚음으로 그들을 명백히 보호(保護)하여 주셨다.  제헌(祭獻)의 시간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들은 더욱 기뻤고, 특히 그들이  죽기 전날은 기쁨에 취한 것 같았다.


⑥ 드디어 그렇게도 기다리고, 그렇게도 열렬(熱烈)히 바라던 날, 승리(勝利)와 보답(報答)의 날이 밝았다.

     5월 23일(7월 3일), 강완숙(姜完淑) 골룸바와 동료(同僚) 4명이, 수레를 타고  형장(刑場)으로 끌려갔다. 길을 가는 동안 그들은 기도(祈禱)하고 서로 격려(激勵)하며, 하느님의 찬미(讚美)를 노래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군중(群衆)들은 그들의 얼굴에 거룩한 기쁨이 빛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형장(刑場)에 이르러 강완숙(姜完淑) 골룸바는, 사형(死刑)을 주재(主宰)하던  괸리(官吏)에게로 몸을 돌려 말하였다.

  ꡒ법에는 사형을 받아야 하는 자들의 옷을 벗기라고 명해졌으나, 여자들을 그렇게 다루는 것은 온당치 않을 것이니, 우리는 옷을 입은 채로 죽기를 청한다고 상관에게 알리시오.ꡓ

   그 허락(許諾)이 내려져,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배필(配匹)들은 크게 만족(滿足)하였다. 그때 강완숙(姜完淑) 골룸바는 십자성호(十字聖號)를 긋고, 맨 먼저 머리를 형리(刑吏)에게 내밀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41세였다.


⑦ 여기서 사건을 조금 앞질러, 홍필주(洪弼周) 필립보의 순교(殉敎)이야기를 하기로 하자.

     그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강완숙(姜完淑) 골룸바의 남편(男便)의 전실(前室) 소생이었다. 그러나 이 나라의 풍습(風習)대로, 그는 언제나 강완숙(姜完淑) 골룸 바의 아들로 불리어졌다. 그는 늘 강완숙(姜完淑) 골룸바와 같이 있었고, 그녀를  따라 서울로 왔으며, 그녀를 언제나 친어머니처럼 대접하였다.

     그들이 신부(神父)를 집에 모셔들었을 때, 홍필주(洪弼周) 필립보는 신부(神父)가 계신 것을 이용(利用)하여, 훌륭한 교우가 되었다. 그는 매일 미사 때 복사(服事)를 하고, 신부(神父)의 어려운 처지(處地)로 인하여 필요하게 되는 모든 도움을 열심히 그에게 드렸다.

     강완숙(姜完淑) 골룸바와 함께 붙잡혀, 다른 감방(監房)에 갇혀 혹독(酷毒)한 고문(拷問)을 당하였다. 처음에는 누를 미치게 하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매우 용감(勇敢)하게 견디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지는 것 같았을 때에, 그의 영웅적인 어머니가 몇 마디의 말로, 그의 신앙(信仰)과 하느님께 의지하는 마음을 되살려 주었다.

     그 이후로 그는 변하지 않았으며, 형벌(刑罰)을 이겨내어, 8월 27일(10월 4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의 머리를 바쳤다. 그때 그의 나이는 28세였다.

출처 : 가톨릭 교리신학원 총동문회
글쓴이 : 가브리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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