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윤(지충)바오로와 권(상연)야고보의 순교-3
⑥ 30일 새벽녘에 우리는 방을 또 옮겨야 했다. 그리고 날이 완전히 밝자 우리는 감영(監營) 감옥(監獄)으로 압송(押送)되었고, 오후에 감영에 불려나가 아래와 같은 신문(訊問)을 당하였다.
ꡒ너희 둘 중에 尹이라는 자가 누구며 權이라는 자는 누구냐?
우리는 각기 이름을 댔다.
ꡒ너희가 늘 하는 일이 무엇이냐?ꡓ
ꡒ소년시절에는 과거를 보기 위하여 글을 공부하였고, 얼마 전부터는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하여주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ꡓ
하고 나는 대답하였다.
ꡒ경서(經書)를 배웠느냐?ꡓ
ꡒ배웠습니다.ꡓ
ꡒ네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하기를 원한다면 우리 경서(經書)가 부족하단 말
이냐? 어찌하여 미신(迷信)에 빠진 것이냐?ꡓ
ꡒ저는 결코 미신(迷信)에 빠지지는 않았습니다.ꡓ
ꡒ그래 천주교라는 종교가 미신이 아니란 말이냐?ꡓ
ꡒ천주는 가장 높으신 아버지시오, 하늘과 땅과 천신(天神)과 사람과 만물(萬物)의 창조주(創造主)이신데, 그분을 섬기는 것을 미신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ꡒ그 도(道)를 간단하게 추려서 말해보라!ꡓ
ꡒ우리가 있는 곳은 범죄사실을 심의하는데 적당한 자리이지 교리를 설명하는
데 적당한 자리는 아닙니다. 우리가 실천하는 것은 십계(十誡)와 칠극(七克)
으로 요약됩니다.ꡓ
ꡒ네 책을 누구에게서 받았느냐?ꡓ
ꡒ그 사람을 댈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 사람이 제게 책을 빌려 주었을 때는 임
금님의 금령(禁令)이 없었고, 따라서 그것을 빌려준 사람은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엄중(嚴重)한 금령(禁令)이 있으니, 만일 제가 그 사람의 이름
을 대면 그는 자기로서는 아무 죄도 없으면서 혹독한 형벌(刑罰)을 당하게 될
것이니, 어떻게 제가 그런 결심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남에게 해
를 끼치는 것을 금하는 계명(誡命)을 어기는 것이니, 저는 그를 밀고(密告)할
수는 없습니다.ꡓ
ꡒ그렇지 않다. 네가 그의 이름을 대더라도 금령 전에 네게 책을 빌려준 그 사
람은 결코 그것으로 인해서 죄가 있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임금님께서는
정확한 보고를 올리라고 명령하셨는데, 네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보고를 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왕명(王命)을 어기는 것이 될 것이니,
두말 할 것 없이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 실토를 하라! 고문(拷問)하
는 것을 기다리지 말고 어서 그 사람의 이름을 대라!ꡓ
⑦ 나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 사촌 權야고보가 대답을 하라고 재촉하므로 나는 우선 이렇게 말하였다.
ꡒ그것은 오래된 일이어서 잘 기억하기가 어렵습니다.ꡓ 그리고 나서 덧붙였다.
ꡒ1784년 겨울에 우연히 중인 계급에 속하는 김범우(金範禹)의 집에 갔다가
그 책들을 보고 빌어다가 베끼고는 책들은 이미 주인에게 돌려보냈습니다.
그후 國王의 금령(禁令)을 알고는 중국종이에 쓴 것은 불사르고, 조선종이에
쓴것은 물로 지웠습니다. 십계(十誡)와 칠극(七極)에 대한 책이 제 집에서 없
어진지는 벌써 여러 해가 됩니다.ꡓ
ꡒ임금님의 명령은 책이 있으면 불살라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 네게 다
른 책이 있으면 즉시 갖다 바치는 것이 옳다.
ꡒ제 고을 郡守가 제 집을 샅샅이 뒤졌지만, 한 장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ꡓ
ꡒ너희는 하늘과 땅이 용납될 수 없는 죄를 지었고, 왕명은 사실을 철저하
게 조사해야 한다고 되어 있으니, 이제 질문을 할 터이니 조목조목 솔직하게
대답해라.ꡓ
그리고나서 감사(監司)는 우리 앞에 문목일람표(問目一覽表)를 내 놓았는데,그 내용(內容)은 대강 이러하였다.
「참된 길을 다르지 않고 허황된 말을 어리석게 믿는 너희들은 세상을 미혹(迷惑)하게하고, 백성을 타락하게 하며, 오륜(五倫)을 파괴(破壞)하고 왜곡(歪曲)한다. 그런즉 너희들이 어떤 책을 배우며 누구와 함께 배우는지를 말하라. 엄한 금령(禁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너희들은 감히 크게 방종(放縱)한 사상(思想)을따르며, 더욱더 어리석은 것은 이론(理論)에 실천(實踐)을 더하는 일이니, 그것은 큰 불충(不忠)이다. 그러나 그 죄(罪)는 비교적 가벼운 것이리라. 임금님의 전교(傳敎)에는 너희들이 이제는 제사(祭祀)를 올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뿐이아니다. 너희들은 신주(神主)를 불사르고, 죽은 이들에게 그들의 의무(義務)를 다하러 온 손님들을 너희 집에 들이지도 않았다. 끝으로 너희들은 부모(父母)에게 장례(葬禮)도 지내드리지 않고, 그러면서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며, 좋은 마음씨를 도로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 행동은 짐승이나 할 짓이다. 너희 책들을 곧 바치고, 너희 모든 동교인(同敎人)을 대라. 그뿐 아니라 너희들 가운데는 비밀히 너희를 지도(指導)하며, 그 종교를 전파하는 주교(主敎)들이 있는데, 너희가 그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러니 아무 것도 숨기지 말고 모든 것을 말하라.」
⑧ 나는 이 논고(論告)를 끝까지 읽고나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ꡒ제가 제사(祭祀)를 지내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신주(神主)도 부쉈습니다. 그
러나 조상(弔喪)을 하러 오는 손님들은 받아들였고, 그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또 부모에게 대한 장례의식(葬禮儀式)은 다 지켰습
니다. 책에 대하여는 방금 어떻다는 것을 말씀드린 것과 같이, 갖다 바칠 것
이 도무지 없습니다. 저는 또 일러바쳐야 할 동료도 없습니다. 주교(主敎)
로 말하면, 여기서는 그 이름조차도 없습니다. 서양(西洋)에는 이 품계(품
階) 가 있고, 그들이 종교의 사무(事務)를 처리(處理)한다고 합니다. 거기에
대하여 물어보고자 하시면, 서양에 물어보셔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 종
교에는 여기 사람들이 뜻하는 것과 같은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습니다.ꡓ
그러니까 감사(監司)는 권 야고보 쪽으로 몸을 돌리고 말하였다.
ꡒ너는 또 어떤 책을 배웠느냐?ꡓ
ꡒ천주실의(天主實義)와 칠극(七克)을 다룬 책을 배웠습니다.ꡓ
ꡒ그 책은 어디서 났느냐?ꡓ
ꡒ그것을 빌려온 제 사촌 尹持忠과 같이 읽었습니다.ꡓ
ꡒ너도 그 책을 베꼈느냐?ꡓ
ꡒ베끼지 않았습니다.ꡓ
ꡒ너도 제사(祭祀)를 안 올렸느냐?ꡓ
ꡒ안 지냈습니다.ꡓ
ꡒ신주(神主)도 불살랐느냐?ꡓ
ꡒ郡守가 제 집을 수색하였을 때에 문서에 기록한 주독(主櫝)이 아직 집에 있
습니다.ꡓ
그리고나서 감사는 그에게 여러 인물들과의 친척관계를 물어 본 다음 이렇게계속하였다.
ꡒ서울에 있는 네 친척 중의 한 사람이, 네가 신주(神主)를 불살랐다는 소문을
퍼뜨렸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ꡓ
ꡒ제가 제사(祭祀)를 지내지 않게 된 후로 친척들은 저를 원수처럼 여기고 ꡐ
저놈은 틀림없이 신주(神主)를 불사르게 될 거야ꡑ하고 말하며 저를 나무랐습
니다. 이 비난(非難)하는 말이 퍼지면서 풍문(風聞)이 되었고, 이렇게 해 필경
제가 신주(神主)를 불살랐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모양입니다.ꡓ
감사(監司)는 다시 나를 향하여 말하였다.
ꡒ홍락안(洪樂安)을 아느냐?ꡓ
ꡒ이름은 들었습니다만, 본 적은 없습니다.ꡓ
ꡒ홍락안(洪樂安)과 그 친구들이 너에 대한 보고를 정승에게 올려 이 분이 나
에게 명령을 내리셨다. 이 사건의 원인(原因)은 이런 것이다. 그러나 네가 부
모의 장사(葬祀)를 지내지 않았다고 떠돌아다니는 풍문(風聞)은 어떤 근거
(根據)가 있을 것이 틀림없다. 아니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있겠
느냐?ꡓ
ꡒ참말이지 저는 그 풍문(風聞)의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장례(葬禮)를 지낼 때
에는 제 집에 전염병(傳染病)이 있어서 친척과 친구들이 오지 않았고, 또 타
지방 사람과 연락을 할 수가 없어서 모든 장례식절차(葬禮式節次)를 동네 사
람들하고만 지켰습니다. 그 때문에 그 소문이 퍼졌을까요? 참말이지 그 원인
(原因)을 모르겠습니다.ꡓ
ꡒ너희 중에는 의논을 하고 문의를 하는 선생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게
누구냐?
ꡒ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천주교회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스승
도 없고, 제자도 없습니다. 하물며 책 몇 권 읽는 일 밖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이 나라에서, 교리를 가장 깊이 연구했다고 자랑하고 선생(先生)으 자처
(自處)할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ꡓ
ꡒ배우지도 않고 안다니, 도대체 너는 얼마나 놀라운 인물이냐?
ꡒ제가 글자를 좀 알므로 책을 펴서 읽기만 하면 됩니다.ꡓ
ꡒ네가 진사(進士)를 하였느냐?ꡓ
ꡒ했습니다.ꡓ
ꡒ어느 해에 하였느냐?ꡓ
ꡒ1783년 봄에 했습니다.ꡓ
그런 다음 여러 사람들과의 내 친척관계를 묻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ꡒ너희 교(敎)에서는 고통(苦痛)과 형벌(刑罰)을 좋아하고 칼 아래 죽기를 좋아
한다니, 그것을 믿을 수가 있단 말이냐?ꡓ
ꡒ살기를 원하고 죽음을 무서워하는 것은 모드 이의 공통된 심정입니다. 어떻
게 순사또의 말씀과 같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ꡓ
우리를 내보내서 감옥(監獄에 왔을 때는 벌써 밤이 되었었다
⑨ 11월 1일 새벽에, 우리 고을 郡守가 우리를 불러 문간 같은 곳에 앉히고, 한 아전(衙前)을 시켜 우리에게 ꡐ십계(十誡)와 칠극(七克)을 외우라ꡑ고 하기에 그것을 외웠더니, 우리에게 관한 말을 써서 감사(監司)에게 보냈다. 조금 후에 그 郡守가 우리를 다시 불러 몇 마디 권고를 하고나서 말하였다.
ꡒ어제 너희들이 말한 것은 진실이 아니고 또한 판결을 내리기에 충분치 않다.
그리고 도 이교(敎)에는 십계(十誡)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王과 臣民의 관계
는 들어 있지 않다. 이것이 임금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임금을 업신기는 도
리라고 부르는 것이다.ꡓ
나는 대답하였다.
ꡒ그렇지 않습니다. 임금님은 온 나라의 어버이시고, 관장은 그 고을의 어버이
입니다. 그러므로 그분들에게는 충성의 본분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모
든 것이 제 4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ꡓ
ꡒ그렇다면 제 4계에 그런 뜻의 주(註)를 달아서 내놓아야 할 것이다. 서양
사람들의 교(敎)는 우리 눈으로 볼 때에는 미신(迷信)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
나 너희들이 그 敎가 옳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고, 또 그 敎가 부모와
임금을 무시하는 불도와 같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따른다면, 어찌하여 신주
(神主)를 모시지 않고 부모에게 제사(祭祀)도 올리지 않는 것이냐? 음식(飮
食)은 바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너희 효성(孝誠)을 드러내는 다른 방법 있지
않겠느냐? 이 모든 것이 너희들에게 있다면 그것을 자세히 지적해 야 한다.
뿐만 아니라 너는 어제, 살기를 원하고 죽음을 무서워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
게 공통(共通)된 심정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면 깊이 생각하고 또 네가 진술을
할 때에, 임금께 대한 충성(忠誠)과 효성(孝誠)의 원칙을 내세움으로써, 목숨
을 보존(保存)할 방도를 찾는 것이 옳겠다.ꡓ
⑩ 사건의 심리를 맡은 임피(臨陂) 현령(縣令)도 내게 외서 조용한 말투로 충고하는 식으로 말하였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ꡒ사또께서 제게 말씀하신 것은 모두 하고 싶습니다. 다만 말로는 모든 것을
명백하게 설명할 수가 없으니, 제게 아전 한 사람과 붓을 주시면 모든 것
을 자세 히 쓰겠습니다.ꡓ
그러니까 그는 나를 다른 방으로 들여보내며, 공술을 써서 바치라고 명령하 였다. 나는 앉아서 아래와 같이 불러주었다.
(이렇게 하여 작성된 供述書는 지금까지의 문초(問招)와 거의 같은 내용이
다. 그리고 이 供述의 내용은 전라도(全羅道) 관찰사(觀察使) 정민시의 장계
(狀啓)에 요약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