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한국 천주교회사

[스크랩] 윤(지충0바오로와 권(상연)야고보의 순교-2

손드러 2010. 1. 18. 22:42
 

《尹(持忠)바오로가 기록한 글》


① 나는 10월 26일(1971년) 저녁때쯤 진산관아(珍山官衙)에 도착하여 곧 저녁을 먹은 후, 郡守 앞에 압령(押領)되었다. 군수는 외쳤다.

  ꡒ너는 그게 무슨 꼴이냐? 어쩌다 그 꼴이 되었느냐?ꡓ

  ꡒ무슨 말씀을 물으시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ꡓ

하고 나는 대답하였다.

  네게 대해서 아주 중대한 소문이 돌고 있는데, 그것이 근거 있는 말이냐? 네

    가 이단(異端)에 빠졌다는 것이 사실이냐?

  ꡒ저는 결코 이단(異端)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天主를 믿는 것은 사실입니

     다.ꡓ

  ꡒ그래 그것이 이단(異端)이 아니란 말이냐?

  ꡒ아닙니다. 그것은 바른 길입니다.ꡓ

  ꡒ그렇다면, 복희(伏羲) 때로부터 송조(宋朝)의 성현(聖賢)들에 이르기까지 실

    천한 것이 모두 거짓이란 말이냐?

  ꡒ우리 교회는 여러 가지 계명(誡命) 중에 다른 사람을 판단(判斷)하고 단죄

   (斷罪)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저는 누구를 비판(批判)하거나 비교(比

    較)할생각은 없고, 다만 천주교를 신봉(信奉)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ꡓ

  ꡒ너는 조상들에게 제사(祭祀) 올리기를 거절하는데, 사랑에는 짐승도 제 어미

    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지 않느냐? 또 어떤 새들도 제사지낼 줄을 알거든(※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 더구나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 孔子의 글에

   서 이런 대목을 읽지 않았느냐? 부모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모든 규칙을 따라

   서 그들을 섬기고, 그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모든 규칙을 따라 장례(葬禮)지

   내드리고, 끝으로 규정된 예식(禮式)을 따라 제사(祭祀)를 올리는 사람만이 자

   기가 효성(孝誠)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ꡓ

  ꡒ그 모든 것이 천주교의 책에는 씌어있지 않습니다.ꡓ

하고 나는 대답하였다.


② 그랬더니 郡守는 孔子의 경서(經書) 중 다른 대목을 인용하면서 행실(行實)을

고치라고 내게 간절히 권고(勸告)하며 한 숨을 쉬며 말하였다.

  ꡒ참 아깝구나. 네 집안의 명성(名聲)은 많은 세대를 내려오며, 너에게 이르기까지 줄곧 높아왔는데, 그것이 이제 완전히 무너졌구나. 너 자신도 재주가 많은학자의 명성을 가졌는데, 네 정신이 미숙(未熟)하고 경솔(輕率)하여 네 조상(祖上)들의 공경(恭敬)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구나. 네가 그렇게 하는 줄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가 즉시 가서 권고하고 네 눈을 뜨게 하여, 이런 극단에 이르지 못하도록 막았을 것이다. 과거에 성현(聖賢)들도 불도(佛道)와 노자(老子)의 도에 오랜 동안 헤매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바꿀 생각이 있으면, 너는 아직도 그분들의 영광스러운 자취를 따라 걸을수가 있을 것이다.ꡓ

  ꡒ제가 아직 마음을 바꿀 수가 있다면 애초부터 그렇게 할 것이지, 여기까지 오

    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ꡒ그렇다면 이제는 너를 더 나은 생각으로 끌어오기 위하여 아무것도 해 볼 것

     이 남지 않았구나. 나로서는 네 운명을 결정하기도 싫고 너를 자세히 신문하

     기도 싫다. 네가 감영에 가서 네 소행에 대하여 보고해야 할 것이다. 네가 부

     모에게서 받은 그 몸을 너는 어리석게도 형벌과 죽음을 당하게 하려느냐? 뿐

     만 아니라 너로 인하여  네 삼촌이 늘그막에 옥에 갇혔으니, 그것이 효도의

     본분을 다 하는 것이냐?

  ꡒ형벌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덕을 닦는 것이 효도의 본분을 어기는 것입니

    까? 제 삼촌이 옥에 갇히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저는 밤에도 쉬지 않고 달

    려와 사또에게 자수하였습니다. 이것이 효도의 본분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

    까?ꡓ

 그랬더니 郡守는 나를 법대로 다루라고 명령하여, 나는 이내 무거운 칼이 씌워졌다. 그런 후에 그는 탄식하며 내게 말하였다.

  ꡒ그게 무슨 꼴이냐? 칼을 쓰고 쇠사슬에 묶여 죽는 것은 죄인으로 죽는 것이

    다.ꡓ

 그리고는 나를 옥으로 데려가게 하였다. 그러나 나를 가두기로 되었던 방이 무너진 채로 아직 고치지 못하였으므로, 나는 다른 감방(監房)에 갇히게 되었다.그날은 그렇게 끝났다.


③ 27일은 별다른 사건이 없이 지나갔다. 28일 조반 때 내 사촌 권상연(權尙然)야 고보가 옥에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도 신문(訊問)을 당하였는데, 그도 같은 질문(質問)을 받았고, 나와 똑같이 대답하였다. 정오에 郡守가 내 삼촌을 불러다가 길게 조위(弔慰)의 말을 한 뒤에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아는 아무개 아무개처럼 해서 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막을 수가 없었단 말이요?ꡓ

삼촌은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고 관아(官牙)에서 나갔다. 삼촌은 즉시 석방된 것으로 생각한다.


④ 해가 질 때쯤 나와 내 사촌은 다시 불려갔다. 큰 칼이 벗겨지고 작은 칼이 씌워졌다. 군수는 우리에게 말하였다.

  ꡒ너희는 全羅道 감사(監司) 정민시(鄭民始)가 있는 전주로 가게 되었다. 그러

    나 어떻게 할 작정이냐? 선비들의 도를 따라 즐거운 길을 가지 않고, 스스로

    불행을 불러들이다니 이게 무슨 짓들이냐?ꡓ

그런 다음 내 사촌 권상연(權尙然) 야고보를 내려다보며 말하였다.

  ꡒ너는 네 모든 친척들 가운데서 살면서 그들에게 그 미신을 퍼트렸느냐?ꡓ

  우리는 둘 다 침묵을 지키고 있었더니, 郡守는 대답을 듣지 못하자 우리들을 내보냈다. 우리는 형사문제(刑事問題)를 담당하는 사령(使令)과 포졸(捕卒) 한 명과 옥리(獄吏) 한 명에게 동반되었다.  그들은 우리를 곧 떠나보내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우리가 관아에서 나왔을 때는 벌써 밤이 되었으므로 길을 떠날 수가 없어, 면임(面任 ; 營邸吏)집에서 잤다.

  29일 첫 닭이 울 때 우리는 길을 떠났다. 신거런※1) 주막에서 처음으로 쉬며 조반(朝飯)을 먹었다. 그 다음은 개바우※2) 에서 쉬며 말을 먹였다. 해가 질 무렵에 안덕※3) 에 있는 고간들의 여인숙 근처를 지나서 조그만 산등성이를 넘자, 우리를 데리러 오는 감영 나졸들을 만났다. 수많은 포졸들이 큰 고함을 지르면서 전진하여 오는데, 어찌나 소란을 피우든지, 우리를 잡는 것이 마치 큰 도둑이나 잡는 것 같아 보였다.


⑤ 우리는 남문 밖에 있는 감영(監營)으로 끌려갔는데, 아주 캄캄하고 밤이 이슥하였으므로 우리 좌우에 횃불을 켜놓고, 우리를 중군아문(中軍衙門)으로 끌고 갔다. 중군(中軍)이 우리에게 말하였다.

  ꡒ너희는 성명이 무엇이냐?ꡓ

우리는 성명을 댔다.

  ꡒ너희가 고발된 죄목을 아느냐?ꡓ

  ꡒ저희는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우리 군수기 우리를 감영으로 보냈으

    므로 그의 명령을 따라 온 것인데, 천만 뜻밖에도 도중에 도둑놈들처럼 붙잡

    혔습니다.ꡓ

  ꡒ너희들이 늘 하는 일이 무엇이냐?

  ꡓꡒ공부를 합니다.

  ꡓꡒ무슨 공부냐?

  ꡓꡒ천주교를 공부합니다.ꡓ

  ꡒ너희들은 각각 어디로 따로 따로 피해갔었느냐?ꡓ

  ꡒ저는 광주에 가 있었습니다.ꡓ

하고 나는 대답하였고,

  ꡒ저는 한수에 가 있었습니다.ꡓ

하고 내 사촌 權尙然(야고보)가 대답하였다.

  ꡒ군수의 명령을 알고서 우리는 각각 즉시 길을 떠나 밤에도 쉬지 않고 돌아와

    서 그에게 자수하였습니다.ꡓ

우리는 이렇게 솔직히 대답하였다. 우리들 목에 18근 짜리 큰 칼을 씌우고, 그리고도 목을 쇠사슬로 얽고, 나무갈고리로 오른손을 칼 가장자리에 잡아매었다.

출처 : 가톨릭 교리신학원 총동문회
글쓴이 : 가브리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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