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인 남해는 ‘사랑해요 보물섬’이라는 통합브랜드를 지니고 있다. 남해는 섬 자체가 보물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내면의 감성을 자아내는 독특한
아름다움은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임진년 해오름 달 스무닷새 날, 차가운 바람을 헤치고 보물섬 최남단에 위치한 은점공소로 달려간다. 몇 해 전 멋지게 놓인 삼천포 대교를 건너 은빛 물비늘이 넘실대는 청정바다와 해안가에 올망졸망 내려앉은 어촌마을을 따라 25분 남짓 달려가니 도로 오른쪽에 은점공소라는 작은 팻말이 나를 반긴다.
물건에서 미조 항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정점에 자리 잡은 은점공소는 탁 트인 조망을 안고 아담한 모습으로 무등산 끝자락에 안겨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피해 공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쁘레시디움 주회가 한켠에서 열리고 있었다. Pr.주회는 일요일인데 이번에는 설 연휴로 연기된 것이라고 공소 회장님이 귀띔해 주었다. 주회 참석 단원이 10명이나 되었다. 도회지 성당과는 달리 열악한 시골 공소에서 한 Pr.단원수가 10명이면 대단한 숫자다.
주회가 끝나고 모두 한 가족처럼 둘러앉아 공소의 어제와 오늘을 함께 나누어 보기로 했다.
남해지역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1880년 경 아마도 병인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온 이스테파노와 이다두라고 하지만 1930년대 서울과 안동에서 이주해온 이 병구(요셉)와 이종봉(마르티노) 이 이곳 남해로 이주해 온 후 본격적으로 복음전파가 이루어져서 일제 강점기 에는 남해 해안 부락에 신자 수가 차츰 늘어났다고 한다.(마산교구 40년사 p.659) 6.25가 끝나고 프란치스코 수도회 강도나토 신부가 삼천포본당에 부임하여 사천, 남해지역 포교에 힘쓴 결과 남해에는 18개의 공소가 설립되는데, 그 중 은점공소는 1961년 10월 세 번째 공소로 탄생하였다.(지금은 미조와 은점공소만 남아있다)
공소가 정식으로 생기기 전, 이곳 은점 마을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이 영규 바오로(1984년 작고)가 1956년부터 자신의 집을 집회장소로 제공하여 공소 공동체를 이끌고 있었다. 이 영규 바오로는 1984년 작고하기 까지 28년 동안 공소회장으로 봉사하여 오늘날의 공소를 있게 한 장본인이라고 한다. 부인 최 점례 사비나와 함께 이웃사랑과 선교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많은 영세자를 배출하였고, 누구든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신자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등의 모범으로 동네사람들의 많은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이 바오로 회장이 지병으로 돌아가신 후 2009년까지 2대 회장으로 봉사한 이 민득 라우렌시오 회장에 의하면 1963년 지금의 자리에 처음세운 블록 벽에 함석지붕의 공소는 지역 신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여름이면 더위와 겨울이면 추위에 떨면서 공소예절을 올려야 했다. 그나마 일 년이면 한 차례 이상 찾아오는 태풍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지붕의 함석이 날아가고, 겨우 얼기설기 때워놓은 함석과 슬레이트 구석구석이 갈라지고 삭아서 구멍 난 천장으로 하늘이 보이고, 비만 오면 공소 바닥으로 비기 쏟아져 내려서, 물통과 고무대야 등을 총동원하여 받혀놓아도 물이 넘치는 바람에 할머니들은 이쪽저쪽을 피해 다니며 안절부절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 한다.
그 후 공소신자들은 보다 안전한 곳에서 기도와 찬미를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느님과 성모님께 간절히 매달리며 기도하는 한편 기금을 모으기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짜내기 시작했다. 거의 대부분이 영세 농어촌 신자이고 가구 수도 적기 때문에 건축기금 신립은 엄두도 낼 수 없어 생각해난 것이 멸치액젓을 담가서 도시지역 본당에 내다 팔자는 것이었다. 할머니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공소마당에서 액젓을 담아 상품으로 만들어 팔기를 10여 년, 그동안 상당한 기금을 마련하여 드디어 2007년 4월 16일 본당과 은인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공소가 완공되어 안 명옥 교구장 주교님 주례로 축복식을 가지는 기쁨을 맛보았다.
은점(銀店)이라는 지명이 예쁘게 들린다. 글자대로 이곳에는 은이 난다고하여 표기된 지명이다. 지금은 폐광이 됐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이곳에서 은을 채광했다한다.
공소 바로 아래쪽에는 300년 된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물건방조어부림(천연기념물150호)과 몽돌해변, 공소에서 자동차로 3분 거리에 독일마을과 원예 예술촌, 바로 지척에 해오름 예술촌, 그리고 자동차로 10분-20분 거리에 나비 생태공원, 남해의 금강이라고 불리는 금산과 보리암이 자리 잡고 있어 피정과 관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곳이다. 이를 위해 2007년 지금의 공소를 지어면서 4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방과 취사도구, 욕실 등을 완비해 놓고 저렴한 이용료로 신자 및 일반인을 기다리고 있다.
평소에는 25명 정도의 신자들이 매월 첫째 주는 남해 본당으로 가서 미사참례하고, 둘째 주와 넷째 주는 이곳에서 공소예절을, 매월 셋째 주에는 본당사제 집전으로 미사가 있다. 레지오는 <순교자들의 모후 Pr.>이 1992년 11월에 첫 주회를 시작하여 금년 3월초면 1,000차 주회를 눈앞에 두고 있고, 주회는 매주 일요일 공소예절을 마친 후 시작하고 마친 후에는 공소에서 식사를 함께 하고 헤어진다고 한다. Pr.의 4간부는 60대이지만 모두 신심이 깊고 활동력이 강한 분들로 구성되어 매우 탄탄하다는 인상을 준다.
공소신자들의 구성은 40대 이하 신자는 없고, 50대 2명 나머지는 전부 60-80대 고령층이다. 필자가 이분들이 나이 들어 병약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하니 현 이 백우 요한 회장은 그 때를 예단 할 수는 없지만 주님은 누군가를 보내서라도 이 공소를 유지시켜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하였다. 1980년대 공소의 주역들이 다 돌아가셨지만 지금처럼 유지되고 있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 남짓 함께 둘러 앉아 공소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분들의 공소에 대한 애착과 개인의 깊은 신심을 서로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이중에는 외지에서 이곳으로 이사와서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는 신자들도 몇 있었다. 오늘 이 시간이 차제에 공소의 과거를 제대로 알아서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모두에게 매우 귀중한 기회였음을 가슴으로 느끼기를 바라며 작별을 고했다. (취재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자리한 남해Cu. 오 계준 미카엘 신임 단장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피정이나 남해 관광을 위하여 공소를 이용하고자 하는 분은 010-8970-1882 이백우(요 한)회장이나 남해성당(055-864-5773)으로 연락하면 됩니다.
주소 :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565-17번지(네비에 <은점공소>로 검색 가능)
참고 : 대여료는 10명까지는 100.000원, 추가시 1인당 10,000원, 취사는 자체해결.
단체 수용인원은 최대 50명까지. 자세한 것은 상기 유무선으로 문의바람.
-2012년 3월호 <월간 레지오 마리애> 기고글 -
좌로부터 이민득 라우렌시오 2대, 이백우 요한 3대 회장, 오계준 미카엘 cu.단장
물건 방풍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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