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변정담/신앙에 대하여

성모님의 얼굴

손드러 2010. 1. 8. 22:04

성모님의 얼굴

 

5월은 온 누리가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달입니다. 온갖 만물이 아름다운 옷으로 치장하는 이 시기를 우리 교회에서는 성모님의 달로 정해 놓았습니다. 어쩌면 이 아름다운 자연과 성모님이 서로 잘 어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5월이 주는 자연의 풍성함이 영적으로 풍요함을 가져다주시는 성모님과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지는 데서 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성모님을 생각하면 풍성하고 아름다운 모성적 사랑을 느끼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성모님의 인내와 고뇌와 고통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성모 님만큼 일생을 고통으로 보내신 분도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성령의 도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시면서 하느님의 인류구원 사업에 동참하셨으나, 어린 아기예수를 키우시면서 육신의 어머니로서 자식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꽤나 속이 썩었으리라 여겨집니다.(루가 2.41이하) 십자가상에 못 박혀 죽어 가는 아들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인간 마리아는 어머니로서 아들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 중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그 고통을 통해 정화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 역사에 온전히 봉헌하실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의 이 같은 봉헌은 수많은 믿는 이들을 위한 충분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지난 4월 사순을 지내면서 성모상 앞에서 성모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청순하고 깔끔하고 인자스런 모습인데 자식의 수난과 고통을 지켜보는 모습은 저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말없이 인내와 겸손의 삶을 살아온 그분의 얼굴은 만년에 어떤 모습이었을까? 가 궁금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자신의 저서<세상사는 이야기>에서 평생을 기도와 순명의 삶을 살아오신 성모님의 모습은 근심과 걱정의 주름이 깊게 패여 있는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모님의 상은 어떠합니까?

교회는 물론이고 가톨릭 신자 가정에 거의 다 모셔놓은 성모님 상은 너무도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2천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서 성모님을 직접 뵌 적이 있는 자가 없으니 그저 상상의 모습이겠지만 나는 이런 모습은 결코 아닐 것이라고 내 혼자 생각해 봅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의 토착화 영향으로 세계의 각 지역에서는 그 나라 고유의 모습과 피부색깔을 가진 예수님과 성모님을 새긴 상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아직은 그런 모습에서 약간은 어색한 느낌을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일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얼굴에 지난날의 세월과 마음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성모님의 얼굴도 인내와 고뇌의 일생을 살아오신 분이시니 당연히 그런 모습이 드러나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면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 여러분은 모두 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인도 캘컷타의 데레사 수녀님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작은 키, 구부정한 허리에 하얀 수녀복 사이로 약간 까무짭짭한 얼굴, 깊게 패인 주름, 둥글고 큰 눈동자에 지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얼굴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기조국 유고슬라비아가 아닌 이역만리 낯선 땅 인도에서 평생을 힘들고 어려운 가난한 이들의 손발이 되어 예수님의 삶을 닮으려고 노력한 공이 인정되어 79년 세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인들에게로부터 살아있는 성녀로 추앙 받았던 것입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시골할머니 같은 그분이 어째서 그렇게 위대한 인물로 존경받게 되었을까요? 그녀의 학력, 출신, 권력, 돈, 명예와는 전혀 거리가 먼 인류에 대한 보편적인 희생과 사랑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사랑은 시대를 초월한 우리 인류의 영원한 화두(話頭)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래 전 T.V 아침마당이라는 이산가족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그중 눈길을 끄는 한 출연자가 있었습니다.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였는데 그녀는 아들을 애타게 찾고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애타게 찾는 아들은 28세 된 정신. 지체 장애 아들이었습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걸음걸이도 정상이 아니고, 특히 정신 연령이 낮아서 당신이 아니면 대. 소변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불쌍한 아이라고 소개하며 꼭 찾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하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때 그분의 갸름한 얼굴에 자식으로 인한 시름의 인고가 주름으로 깊게 패여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얼굴에서 풍겨나오는 인상은 어딘지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서 안타까워하는 모습까지 그분의 작은 얼굴 속에 담겨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수난과 고통과 죽음은 성모 님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이상이었으리라 생각하면서 만물이 푸르럼을 한껏 뽐내는 아름다운 계절 5월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결코 화려하지도 순탄하지도 않았던 성모님의 생애를 묵상하며 성모상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까, 그 아름다운 모습위로 고통으로 점철된 고뇌의 모습이 겹쳐져서 엉뚱하지만 나름대로 이유 있는(?)성모님의 얼굴을 마음속에 그려보았습니다.

아름다움은 잘생긴 외모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 사람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결실의 결과라는 것을 생각할 때

조만 간에 성모님의 얼굴이 현재와는 다른 상으로 묘사될 때가 오리라고 생각해 봅니다.

주름살 깊게 패인 성모상이 언제쯤 나올 것인지 기다려 봅니다.

2003년 4월 어느날

손형도 안드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