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변정담/My Writings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하며

손드러 2010. 1. 8. 17:09

바보를 먼길로 떠나 보내고

 

2009년 5월 23일을 기억하리라!

한나라의 직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하여

죽음으로 세상을 일깨운 그날을.

직전 대통령이 무엇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

미련하게도

이 땅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바꾸려했고.

눈물이 많아 고통 받는 약자들의 편에 서고자 했고.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지역감정의 틀을 깨고자 노력했지.

무엇보다도

이 나라 주류들의 굳건한 벽을 허물고자 애썼고.

학연 지연 인맥 보다는 실력으로 당당히 맞서려고 했고.

쉽고 편한 길보다는 좁고 어려운 길을 스스로 걸어갔지.

조중동과의 정면 대결은

자신의 인기를 추락케하고 입지를 약화시키는 줄 뻔히 알면서

고집스럽게 그렇게 했지.

이런 면들을 보면 분명 그는 바보임에 틀림없다.

남들이 바보 노-ㅁ 현을 안주삼아 씹어 댈 때도

나는 그가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대통령이었다.

비주류가 발 디딜 틈조차도 없는 이 나라에서

그런 분이 대통령이 된 것부터가

내가 믿는 하느님의 뜻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지금껏 역대 대통령과는 확실히 달랐다.

교육의 3불정책, 부동산 대책, 대미 관계, 대북관계, 지방분권정책,

국정원의 정치 불간섭,

검찰-

이놈들에게도 정권에서 중립을 지킬 기회를 제공했음에도

권력의 달콤한 맛에 취한 놈들의 모습에서 쥐 잡는 고양이는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다른 것을 잡아서 쥐에 갖다 바치는 비굴한 모습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는 고향 봉하마을로 내려가

사람 떠나는 농촌을 더불어 함께 모여 사는 곳으로 바꾸고자 했다.

'기분 조-옷 타'라고 고향마을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그는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소박한 촌부로 살고 싶어 했다.

어쩌면 그분은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퇴임 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는 최초의 대통령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분을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분의 존재마저도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나 보다.

국내 서열 620위 지방의 중소기업을

표적 세무 조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을 수사한답시고

퇴임한지 일년 남짓한 전직 대통령 본인뿐만 아니라.

아내, 아들, 딸, 사위, 아버지 같은 친 형님, 사돈, 주변 참모,

심지어 정치 후원금을 낸 사람들의 계좌 추적까지 했단다.

그것도 한사람의 피의자의 입으로 나온 말만으로...

증거도 없이 전직 대통령을 나라 끝에서 끝까지 버스에 태워

텔레비전으로 중계까지 해가면서 검찰에 소환하는 호들갑을 떨었다.

오로지 대의명분과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온 그의 일생은

이 쯤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어진 상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유서에서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느냐'라고 하셨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다.

교회의 입장에서는 자살을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는 그분의 억울한 죽음을

대놓고 변호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더 답답하고 분노한다.

사람은

태어남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듯이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해서도 안되는 것이 진리일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자살은 방조되어서도 안되고 부추겨서도 안됨은 사람이면 다 알고 있다.

자살은 suicide라고 한다. 자신을 죽인다는 뜻이다.

타살은 homicide라고 한다.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다.

죽이는 행위는 같은데 하나는 자신이고, 하나는 타인이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태어난 사람은

자신이나 타인이나 똑 같이 귀중한 존재이다.

그러나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몬 자들은

버젓이 활보하고 있는데

벼랑 끝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공간으로 밀려

스스로 죽는 길로 떠밀릴 수 밖에 없었던 죽음을

누가 비난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분명 우리나라의 보수언론,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자들,

정권에 충성을 보이고자하는 비뚤어진 검찰에 의해서 저질러진

정치적 타살임에 틀림없다.

내가 믿는 하느님은

억울한 자의 신원(伸寃)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시다.

타의에 의해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영혼도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삶에서 이미 죽음으로 건너간 분에 대한 것은

살아있는 우리들의 판단의 몫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몫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지난 26일 봉하마을로 그분의 빈소에 찾아가

큰절로 그분을 내 마음속에 소생시켰다.

보지 않았는가?

전국 곳곳에서 조문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눈물 속에 부활한 바보 노무현을!

국민장 당일 서울광장을 꽉 메운 노란 색의 물결 속에 부활한 바보 노무현을!

죽음으로 우리들을 일깨워준

바보 노무현,

우리나라 정치인중에 내가 가장 존경했던 바보 노무현!

그분은 그렇게 자신을 버렸지만

그는 결국 모든 것을 얻었다.

대한민국..

우리가 태어나고 죽을 우리의 조국.

그러나

과거사를 단 한번(?)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때와 피가 묻은 옷을 빨 새도 없이 겉옷만 갈아입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거미줄처럼 서로 얽혀 보호 망을 치고는

걸리기만 하면 누구든지 아작 내는 현실.

앞으로 몇 명의 바보 노-ㅁ현같은 죽음이 나와야

두터운 이 옷들을 벗겨낼 수 있을 까?

자식들 에게는 참되고 바르게 살아라.

대의명분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되어라.

불의 보다는 정의를 택하라.

현실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자신은 그와는 반대의 길을 걷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가치관의 혼란을 주고

결국 아이도 그와 같은 길을 걷는 결과를 낳는 악순환을 언제 바로잡을 수 있으려나?

순수와 이상, 희망과 신념을 삶으로 보여주며

불가능 할 것 같은 교과서적 삶을 살다간

바보 노-ㅁ 현이 두고두고 그리워 질것 같다.

굵은 주름살 박힌 촌부의 얼굴에

자전거를 차고 가면서

천진스레 짓는 미소가 벌써 눈에 아른거린다.

다만

그분은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나의 가슴속에는 살아있다.

다만 안타까운 아쉬움만 인간적 감정으로 남아있지만........................................................

2009.06.02 -노무현 대통령을 보내고 봉하 마을에 다녀와서- 손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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