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리) 상식

[스크랩] 성경에 관한 40가지 질문

손드러 2010. 1. 6. 08:54

성서의 마흔 열쇠

1. 예수께서는 정확히 언제 탄생하셨습니까?

옛 성현들도 그렇지만 예수 탄생의 정확한 연도나 달, 날짜를 알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기원 원년에 탄생하신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서를 근거로 해서 탄생년도를 대략 추측할 수가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과 루가복음에 그 근거가 있습니다. 마태오 2장 1절과 2장 19절, 루가 1장 5절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헤로데 대왕 생존시 탄생하셨습니다. 헤로데 대왕은 기원전 37년부터 4년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린 왕입니다. 그는 기원전 4년 4월경 예리고에서 죽었습니다. 성서의 기록대로 예수께서 헤로데 대왕 시절에 탄생하셨다면 자연히 기원전 4년 이전에 탄생하신 것이지요. 그래서 성서학계에서는 예수께서 기원전 6년에 탄생하신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그리스도 탄생을 원년으로하고 있는 서력기원(서기)과 6년이나 차이가 있는 걸까요?

서기는 이탈리아 수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우스(Dionysius Exiguus)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는 525년 당시 교황 요한 1세(523-526년 재위)의 요청으로 부활절의 정확한 계산법을 산출하던 중에 서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당시 로마제국에서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던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 즉위 기원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디오니시우스는 "대(大)박해자의 이름을 영속시키지 않고 우리 주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햇수를 세기 위해" 서력 기원을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디오니시우스는 로마제국 건국 후 753년을 예수께서 탄생하신 서기 1년으로 잡았습니다(로마제국은 기원전 753년 4월 21일에 건국되었음). 그러나 계산착오로 예수께서 탄생하신 해보다 6년 가량 늦었습니다. 그 뒤로 여기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었었지만 지금까지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오늘날 우리는 예수 탄생 축일을 12월 25일에 지내고 있습니다. 성서에 그 근거가 있나요?

한마디로 성서에는 그 근거가 없습니다. 아무리 성서를 다 뒤져 보아도 예수께서 태어나신 달이나 날짜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단지 루가 2장 8절에 목자들이 들에서 지내며 밤새워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이나, 루가 2장 12절에 갓난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혔다는 사실이 추운 겨울은 아니었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기후는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것이 아니고 두 시기, 즉 우기와 건기로 구분됩니다. 겨울 우기는 보통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여름 건기는 나머지 7개월간 계속되고, 또 겨울이라도 기온이 영하로는 떨어지지 않으니 루가가 언급한 두 사실(2, 8. 12)이 겨울 우기 중에도 일어날 수 있겠지요.

지금 우리가 지내고 있는 12월 25일 성탄절은 콘스탄티누스 황제(306-337년 재위)가 즉위한 다음부터 서방교회에서 축제로 지내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교부 히뽈리투스(+235)는 그 풍습이 2세기에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택한 이유는 그 날이 로마인들의 태양신인 미드라를 위한 축제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 날을 예수의 탄생일로 택함으로써 순전히 이교도적인 축일을 주 예수를 찬양하는 날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만인을 비추시는 새로운 태양으로 떠오르셨다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이교도 풍습을 흡수함으로써 토착화한 것이지요.

서방교회와는 달리 동방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축하하고 있습니다. 전세계가 예수 탄생일로 경축하고 있는 12월 25일 역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고 신학적, 구원론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3. 오늘날 우리는 예수 탄생 축일을 12월 25일에 지내고 있습니다. 성서에 그 근거가 있나요?

한마디로 성서에는 그 근거가 없습니다. 아무리 성서를 다 뒤져 보아도 예수께서 태어나신 달이나 날짜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단지 루가 2장 8절에 목자들이 들에서 지내며 밤새워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이나, 루가 2장 12절에 갓난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혔다는 사실이 추운 겨울은 아니었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기후는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것이 아니고 두 시기, 즉 우기와 건기로 구분됩니다. 겨울 우기는 보통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여름 건기는 나머지 7개월간 계속되고, 또 겨울이라도 기온이 영하로는 떨어지지 않으니 루가가 언급한 두 사실(2, 8. 12)이 겨울 우기 중에도 일어날 수 있겠지요.

지금 우리가 지내고 있는 12월 25일 성탄절은 콘스탄티누스 황제(306-337년 재위)가 즉위한 다음부터 서방교회에서 축제로 지내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교부 히뽈리투스(+235)는 그 풍습이 2세기에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택한 이유는 그 날이 로마인들의 태양신인 미드라를 위한 축제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 날을 예수의 탄생일로 택함으로써 순전히 이교도적인 축일을 주 예수를 찬양하는 날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만인을 비추시는 새로운 태양으로 떠오르셨다는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이교도 풍습을 흡수함으로써 토착화한 것이지요.

서방교회와는 달리 동방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축하하고 있습니다. 전세계가 예수 탄생일로 경축하고 있는 12월 25일 역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고 신학적, 구원론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4. 예수님의 공생활 기간은 몇 년입니까?

우리는 흔히 예수님의 공생활 기간을 약 3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 복음에 따른 것이지요. 요한 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공생활 기간 중 세 번 해방절을 맞으십니다(2, 13; 6, 4; 11, 55). 그러니까 공생활 기간이 약 3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관 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단 한 번 해방절을 맞으십니다. 사실 공관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의 공생활 기간은 불과 몇 달에 불과합니다. 요한 복음이 연대기적으로 더 역사적인 사실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생활 기간을 약 3년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루가 3장 23절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서른 살 가량 되어 전도하기 시작하셨다"고 되어 있으니 여기에 공생활 기간 3년을 더하여 계산함으로써 예수님은 서른세 살에 돌아가신 것으로 여기지요.

과연 우리는 '서른 살'이라는 이 연령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서른 살'은 일종의 이상적인 나이로 여겼습니다. 서른 살이 되어야 제관이 될 수 있었고(민수 4, 3) 같은 나이에 요셉은 파라오를 섬겼으며(창세 41, 46), 다윗은 왕위에 올랐고(2사무 5, 4), 에제키엘은 예언자로 불림을 받았습니다(에제 1, 1).

이제 성서 본문을 통하여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신 연대를 추측해 봅시다.

루가는 예수님의 공생활의 시작을 "티베리오 황제 치세 십오년"으로 봅니다(3, 1). 티베리오 황제는 기원 후 14년 8월 19일에 즉위하였습니다. 당해 연말까지를 치세 1년으로 치고, 새해와 함께 치세 2년으로 치는 근동지방의 계산법에 따르면 티베리오 황제 치세 15년은 기원 후 27-28년이 됩니다.

또 요한 2장 20절에 보면 예수께서 성전정화를 하실 때 유대인들이 "이 성전은 사십육 년이나 걸려서 지었다"고 합니다. 헤로데 왕은 이 성전 증축 공사를 기원 전 20-19년에 시작하였으니(요셉 플라비우스, "유대고사" XV, 11, 1) 예수의 공적인 활동은 27-28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루가와 너무나 잘 들어맞는 것입니다.

기원 전 6년에 태어나셔서 기원 후 27-28년에 공생활을 시작하셨으니 그때 연세가 33세 가량 되었을 것이고 기원 후 30년 4월 7일에 돌아가셨으니 36세 가량 되신 것 같습니다.

5. 예수께서 30년 4월 7일에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사망 연월일을 성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사망 연월일은 추측 가능하지만 확정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초대 교부들도 예수께서 돌아가신 정확한 연대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끌레멘스 교부는 티베리오 황제(14년-37년 재위) 통치 16년, 곧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42년 6개월 이전에 예수께서 돌아가셨다고 하니 그것은 기원후 29-30년이 됩니다. 에우세비오 교부는 예수께서 기원후 33년에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마르코 복음 15장 42절과 요한 복음 19장 31절에 따르면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에 예수께서 돌아가셨으니 금요일에 돌아가신 셈입니다. 그런데 마르코(14, 12)와 루가(22, 8.11.15) 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목요일 저녁,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니산'달 15일이 시작하는 첫 저녁별이 떠 오른 다음 제자들과 함께 최후 만찬을 드시고 해방절 축제가 한창 진행 중이던 금요일에 돌아가셨습니다(유대인들의 날짜 계산은 우리와는 달리 해질 때부터 시작해서 다음날 해질 때까지를 하루로 합니다).

하지만 요한 복음(13, 1이하)에 따르면 해방절 축제 전날, 즉 '니산'달 14일에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최후 만찬을 드시고 해방절을 준비하기 위해 양을 잡던 시각, 오후 3시경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까 마르코, 루가에 따르면 니산달 15일에, 요한에 따르면 니산달 14일에 돌아가셨는데 모두 금요일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났으며, 또 어느 복음이 역사적 사실에 더 부합하는지 학자들간의 논쟁은 치열합니다. 일반적으로 요한의 연대순이 더 옳다고 봅니다. 이것을 근거로 해서 어느 해의 니산달 14일, 혹은 15일이 금요일이었는지를 알면 예수님의 죽음의 연월일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천문 역산법으로 계산해 본 결과 27년 4월 11일, 30년 4월 7일, 33년 4월 3일 세 가지 가능성이 제시되었습니다. 27년 4월 11일은 너무 이르고 33년 4월 3일도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개연성이 희박합니다. 그래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예수님의 사망 연월일은 30년 4월 7일입니다. 그러니까 30년 4월 6일 목요일 저녁 최후 만찬을 드시고 그 다음날 4월 7일 금요일 오후 3시경에 골고타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6. 신약성서에서 말하는 "예수의 형제들과 자매들"은 누구를 말합니까? 친형제 자매들입니까, 아니면 친척들입니까?

한마디로 어렵고 복잡한 문제입니다. 개신교에서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을 부인할 때 이 구절들을 들이대면서 공격을 하면 우리 신자들은 변변히 대답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일찍부터 이 문제 때문에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먼저 성서에서 예수의 형제들(자매들)이 언급되는 구절들을 봅시다. 마르코 복음 6장 3절에 "이 사람은 고작 장인이며, 마리아의 아들로서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또한 그의 누이들도 여기서 우리와 함께 지내고 있지 않은가?"라고 되어 있습니다(참조, 마태 13, 55-56). 그 이외에 요한 2, 12; 7, 3.5.10; 사도 1, 14; 갈라1, 19; 1고린 9, 5에 "예수의 형제(들)"에 대한 언급이 있고, 마태 12, 46-50; 마르 3, 31-35; 루가 8, 19-21에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제 여기에 대한 세 가지 견해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헬비디우스의 견해: 그는 주의 형제들은 요셉과 마리아가 낳은 예수보다 손아래 아들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주장을 테르뚤리아누스가 받아들였고 오늘날 개신교가 이 주장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복음서에서 언급된 네 형제들이 사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르코 복음 3장 31-35절(마태 12, 46-50; 루가 8, 19-21)에 그들이 예수를 불신하였기 때문에 예수를 붙들러 왔고, 또 요한 7장 5절에 "예수의 형제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사도 바울로는 고린토 전서 9장 5절에 사도들과 주님의 형제들을 명백히 구분하기 때문에 예수의 형제들이 분명히 사도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만일 예수님의 친형제가 있었더라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어찌하여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셨던 제자'에게 맡기셨겠느냐는(요한 19, 26-27) 에피파니우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그의 형제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개신교에서는 마태오 복음 1장 25절의 "요셉이 아들을 낳을 때까지 아내와 동침하지 않고 지냈다"는 구절을 들어 아들을 낳은 후에는 동침했다고 주장하거나, 루가 복음 2장 7절의 "첫아들을 낳았다"는 표현을 들어 그후로 둘째, 셋째.... 아들까지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2) 에피파니우스의 견해: 그는 주장하기를 예수의 형제들은 요셉의 아들일 뿐 마리아와는 관계가 없다고 했습니다. 마르코 복음 3장 31절과 요한 복음 7장 3-4절에서 나타난 형제들의 태도로 볼 때 그들은 예수의 손위였으며, 그렇다면 마리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2세기 위경인 <원야고보 복음서>에도 요셉의 전처의 소생들을 언급합니다. 오리게네스, 암브로시오도 이 의견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만일 예수의 형제들이 실제로 있었다면 어떻게 예수께서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셨던 제자'에게 맡기실 수가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이 견해는 3-4세기 및 그 이후에 걸쳐 폭넓게 받아들여졌으며 그리스 정교와 다른 동방교회 및 많은 개신교들도 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3) 예로니모의 견해: 신약성서에서 "누이들"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지만 네 "형제들"의 이름은 언급됩니다. 바로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입니다. 이중 셋은 사도들의 명단에 나옵니다(마태 10, 2-4; 마르 3, 14-19; 루가 6, 12-16; 사도 1, 13). 그 중 야고보는 두 번 나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 불리는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루가 6, 14-16)가 주님의 형제라고 불리는 이들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사도 바울로가 말하는 "주님의 형제 야고보"(갈라 1, 19)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확실합니다.

이들 중 야고보와 요셉은 마리아의 아들로 불리는데 이 여인은 주님의 수난 때 십자가 곁에 있던 여인들 중 하나입니다(마태 27, 56.61; 28, 1; 마르 15, 40-47; 루가 24, 10). 이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일 수 없습니다. 이 마리아를 십자가 발치 아래 있었던 그의 어머니의 여동생(이모)으로 보고 있습니다(요한 19, 25). 이렇게 되면 예수와 야고보와 요셉은 사촌간입니다. 아니면 이 두 사람은 그 다음에 나오는 글로파의 아내 마리아의 아들들일 수 있습니다. 글레오파스 혹은 글로파스는 알패오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두 이름 모두가 아람어 '할파아'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야고보와 요셉뿐 아니라 시몬과 유다(이들은 약간 의심스럽지만)는 마리아와 알패오로 알려진 글로파의 아들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또는 글로파를 예수의 양부 요셉의 형제로 보기도 합니다. 이 의견을 가톨릭교회가 받아들였습니다.

위의 세 견해를 보고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보통 "형제(들)"이라는 말은 혈연관계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이념과 신앙을 함께 하는 종교적 공동체 같은데서는 혈연을 뛰어 넘어 이 말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성서에서도 이런 예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이 말을 아버지 뜻을 받들어 행함으로써 당신과 일치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하셨습니다(마태 12, 46-50). 사도 바울로와 그의 동료들도 프톨레마이스에서 "형제들"에게 인사하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사도 21, 7). 구약에서도 아브라함이 자신의 조카인 롯을 '형제'라고 불렀습니다(창세 14, 14). 또 이스라엘 사회에서 형제.자매는 친동기를 뜻하기도 하고 그냥 친척을 뜻하기도 했기 때문에 정확한 구별이 쉽지 않습니다.

위경 원야고보 복음서나 오리게네스, 암브로시오 등이 주장한 설, 즉 "예수의 형제들"이 양부 요셉의 전처의 소생이라는 설도 한 마디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것은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를 잉태하셨을 때에 동정이셨다는 것입니다(마태 1, 18-25; 루가 1, 26-27; 2, 7).

예수께서 "첫 아들"이라는 것도 달리 해석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외아들이든 장남이든 아들을 얻으면 하느님 차지로 간주했습니다. 하느님 차지인 첫 아들을 부모가 사서 기른다는 뜻으로 부모는 첫 아들이 나면 한 달 안에 성전 비용으로 다섯 세겔(=20데나리온)을 바쳤습니다(출애 13, 2.12-13.15; 34, 20; 민수 3, 12-13; 18, 15-16; 루가 2, 23 참조). 그래서 루가 복음 2장 7절의 "첫아들"이라는 표현은 "하느님 차지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루가가 예수의 경우 "첫 아들"이라고 한 것은 이 아들이 "하느님 차지 아들"이고 장차 다윗의 왕좌를 계승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 이 구절을 논거로 해서 예수님 다음에 또 다른 아들이 태어났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또 마태오 복음 1장 25절을 우리 말 역문으로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다음 동침했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에서는 ".......때 까지 ........않았다"라 하면 뒷날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을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7.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라"(마태 5, 39)는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먼저 이 말씀이 복음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마태오, 루가 복음에 나옵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쪽 뺨(공동번역: 왼뺨)을 돌려대라"고 하셨고, 루가 복음에서는 오른뺨, 왼뺨 구별없이 그냥 "누가 (한쪽)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 주라"(6, 39)고 되어 있습니다. 양 복음에서 이 말씀은 모두 예수님의 산상설교(루가에서는 평지설교)에 있으며, 특별히 마태오 복음에서는 여섯 대당명제(對當命題) 중 다섯 번째 "보복하지 말라"는 대당명제 안에 들어 있습니다.

대당명제란 "구약의 율법을 없애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마태 5, 17)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사회에서 통용되어 왔던 여섯 개의 법조목을 뽑아 당신의 가르침과 대비시키시면서 그 법을 폐기 내지 심화시키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대당명제는 "----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는 양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섯 번째 대당명제에서 예수님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출애 21, 24; 레위 24, 20; 신명 19,21)의 소위 <동태복수법>에 대한 당신의 가르침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은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 왕국의 함무라비 대왕이 편찬한 법전의 기본법으로서 구약성경에도 여러 번 나옵니다(출애 21, 24; 레위 24, 20; 신명 12, 21). 예수님 시대에는 어떤 사고나 문제가 생겼을 때 그로 인하여 입었던 피해를 똑같은 방식으로 가해자에게 돌려주는 동태복수법이 통용되었던 것입니다. "사고가 생겨 목숨을 앗았으면 제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출애 21, 23-25)."

본래 동태복수법은 약자 보호를 위한 것입니다. 복수를 하되 무한정으로 하지 말고 당한 만큼만 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예 보복을 할 생각조차 갖지 말라'시며 차라리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같이 상대방의 오른뺨을 치려 들지 말고 왼뺨을 돌려대 줄 생각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요즈음 세상에 이렇게 하는 사람, 아니 그리스도인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옛날 옛적에 흥부라는 사람이 형수의 밥주걱에 한쪽 뺨을 얻어맞자 다른 쪽을 돌려대 주었다는 이야기는 있어도, 요즈음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차라리 우리네 심산으로는 '한강에서 뺨맞고 종로에서 분풀이한다' 것은 이해가 더 잘 갈지 모르겠습니다. 하기야 예수님께서도 대제관의 하인들 중 하나가 당신의 뺨을 때리자 다른 쪽을 돌려대 주시지 않으시고 "왜 때리느냐?"고 따져 물으셨으니까요(요한 18, 22-23).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고 그 정신을 새겨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실천의 차원에서 만들어진 동태복수법마저 예수께서는 거절하시면서, 누가 자기 뺨을 때리면 당장 일어서서 상대방의 뺨을 더 힘껏 때리거나, 아니면 양쪽 뺨을 휘갈기지 말고, 또 그럴 형편이 아니라면 괜히 아무런 상관도 없는 옆 사람의 뺨을 치거나, 그것도 안될 때는 지나가는 강아지라도 걷어차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예 복수하려는 마음조차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비장한 결단없이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이 대당명제와 반(反)보복율의 가르침입니다.

8.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마태 8, 20; 루가 9, 58)는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마태오와 루가 복음에 모두 나오는 것으로써 예수님을 따르려는 제자들의 태도 내지 마음가짐에 관한 요구입니다. 마태오 복음에 따르면 '율법학자 한 사람'이(8, 19), 루가 복음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9, 57)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는 위의 말씀으로 대답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연 예수께서 율법학자나 그 사람에게 추종을 허락하셨는지 아니 하셨는지 하는 것도 애매한 것은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예수께서 추종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유대사회에서 통용되던 지혜 문학적 격언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격언에다가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은 덧붙임으로써 이 격언을 당신께 적용하신 것이지요. 그 뜻을 보면 이렇습니다. '여우의 굴'이나 '새의 보금자리'는 인간에게 가정과 같은 편안하고 따뜻한 안식처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짐승들도 저마다 쉴 수 있고 편히 지낼 수 있는 거처를 가지고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짐승들도 누리는 안전한 생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이것은 다름 아닌 예수님의 사명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와 그 복음을 선포하고자 굳은 결심을 한 이후부터 이런 삶을 사셔야 했고, 또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 때문에, 또 복음 선포 때문에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셔야 했기에 평안함은커녕 몸 뉘일 곳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고향인 나자렛에서마저 배척을 받으셔야 했고(마르 6, 1-6과 그 병행구절), 가파르나움에 오셔서는 베드로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셔야 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철저한 삶을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요구하신 것입니다. 스승을 따르려는 제자들 역시 가정에서 누리는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그분과 함께 복음선포의 길에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는 모든 것, 집, 가정, 가족, 부모 재산, 명예 등을 다 포기해야 하고, 때로는 냉대와 수모를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하며, 철저히 외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추종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조건부 허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자기 결단과 자기 포기의 자세로써만이 당신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9. 마태오 복음 9장 14-17절(=마르 2, 18-22)의 단식 논쟁 중에 낡은 옷에 새 천조각을 대고 기우면 안 되는 것과,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면 안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요? 또 이것이 단식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요?

이 단식 논쟁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자주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당시 요한의 제자들과 경건한 바리사이들은 자주 단식을 했는데 예수님과 제자들은 단식법을 무시하고 단식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먼저 혼인잔치를 예로 드시면서 신랑과 함께 있는 손님들이 어떻게 단식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질문자께서 질문하신 내용의 두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본래 "낡은 옷에 새 천조각을 대고 깁는 것"과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는 것"은 단식 논쟁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전해 내려 온 비유였습니다. 그런데 단식 논쟁에 덧붙여져서 예수님의 대답을 명백하게 합니다.

이 두 비유는 일반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상식적인 것입니다. 상식있는 주부라면 아무도 헌 옷을 새 천조각으로 수선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새 천조각이 낡은 옷감을 당기게 되어 전보다 더 크게 찢어 놓기 때문에 옷은 더 못쓰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포도주를 만드는 사람도 발효되고 있는 새 포도주를 터지기 쉬운 낡은 가죽 부대에 담지 않을 것입니다. 낡은 가죽부대는 술의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터지고 말 것입니다. 이 두 비유 모두 다 "새 것"(새 천조각, 새 포도주)과 "옛 것"(낡은 옷, 낡은 부대)을 대조하면서 서로 어울리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와 그 시대는 분명히 혁신적이고 새롭습니다. 새로운 메시아 시대는 새 포도주처럼 격렬하고 새 천처럼 선명합니다. 이 시대의 법은 기쁨과 활기에 찬 '새로운 법'으로서 낡은 시대, 낡은 법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새 시대는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형식만을 중시했던 낡은 단식법보다 사랑과 희생의 정신으로 마음을 다하여 단식을 하라시는 말씀입니다.

10.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 34)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루가 복음의 병행문(12, 51)에서는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을 굉장히 당혹스럽게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이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신 메시아이시고, 또 행복 선언에서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 5, 9)라고 하셔놓고는 이제 와서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고 분열을 조장하러 오셨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면 더 가관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맞서고, 딸은 어머니와,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서로 맞서게 하려고"(10, 35) 예수께서 오셨고,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10, 36)라고까지 하시니 어쩌면 성서를 집어던지고 싶은 심정일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는 종말의 환난 시대에 관한 구약과 유대교의 묵시문학적 표상 전통과, 둘째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처했던 정치, 사회적 환경입니다.

묵시문학적 전통에 따르면 종말의 환난 시대에는 전쟁, 기아, 질병, 가족내 분쟁, 배교 등이 일어난다고 되어 있습니다(마르 13장과 요한 묵시록). 또 이 말씀들의 형성에는 묵시문학적 종말론뿐 아니라 예수와 제자들의 체험담이 들어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께서 복음 선교 활동을 하실 때 '정신 나갔다'며 예수님의 친지들이 잡으러 왔고(마르 3, 21), 형제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니까(요한 7, 5) 예수님의 가족은 분열되었지요. 또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르다 보니 그들의 가정들도 분열되었습니다(마르 10, 29-30과 그 병행문).

예수님은 이런 분열 현상들을 종말 전조로 이해하셨습니다. 그래서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는 말씀은 가족들의 만류와 회유를 단호히 잘라낼 수 있어야만 복음을 전하러 나설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 칼이 의미하는 것은 비단 가족과의 단절만이 아니라 복음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단호하게 끊어야 함을 나타내는 표징입니다. 즉 칼은 억압과 굴레의 사슬을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 말씀은 예수를 따르는 것과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해서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것들을 위해서 무엇이든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산고의 고통이 있어야 새 생명이 탄생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듯이, 참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찢겨지는 아픔을 받아 안아야 함을 일러주시는 사랑 어린 일깨움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11."사람의 아들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 32)에서 "성령을 거스른 용서받지 못할 죄"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공관복음 모두에 다 나옵니다(마태 12, 31-32; 마르 3, 28-29; 루가 12, 10). 그런데 사람의 아들, 즉 예수님을 거역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거역하는 사람은 용서받지 못한다고 하니 도대체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과 성령을 대비해 놓고 마치 성령이 더 중요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거역하는 죄'란 지난 날 지상의 예수께서 역사적으로 활동하실 때 모르는 중에 불신하고 거역한 죄라는 것입니다(사도 3, 17). 그런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제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고 또 성령이 활동하시는 초대 교회의 선포마저 불신한다면 용서받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시대보다 교회 시대(=성령 시대)가 더욱 결정적인 때라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회개의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볼 때 성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성령을 증언하는 그리스도교의 예언자들에 대항하거나 이들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설교자에 대한 거역은 바로 성령에 대한 거역이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100년경에 저술된 『열 두 사도의 가르침』에 보면 이와 같은 사상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영 안에서 말하는 모든 예언자를 시험하거나 판단하지 마시오. 모든 죄가 용서받겠지만 이런 죄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11, 7).

이런 사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은 예수 부활 이후의 선교활동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따라서 교회에서 생겨난 말씀이라고 주장합니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상에 비추어 볼 때 예수께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말씀하시리라고는 여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환경 안에서 이 말씀을 해석해 본다면 "성령을 거역하는 죄"는 어떤 구체적인 죄라기보다는 성령을 배척하는 인간상, 초월자를 부정하는 폐쇄적인 인간상이라고 생각하면 보다 쉽게 납득이 가는 것 같습니다. 교황 요한 바울로 2세께서 2,000년 대희년을 경축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내놓으신 회칙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에서도 여기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거스른 모독죄란, 성령께서 인간 안에서 용서를 베푸시고 양심 안에서 참된 회개를 이루어주실 때, 그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근본적으로 거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46항).

12. "자녀들이 먹는 빵을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마르 7, 27; 마태 15, 26)는 말뜻은 무엇입니까?

아무래도 이 말은 예수님 당시나 사도들 시대의 선교 상황을 반영한 듯합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복음 선교 활동이 우선적으로 유대인들에게 행해져야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 15장 24절 같은 데서 "나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 가운데서 당신의 제자들을 뽑으셨고, 또 열두 부족의 상징으로 열두 제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이방인들이 사는 곳으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도시에도 들어가지 말라. 다만 이스라엘 백성 중의 길잃은 양들을 찾아가라"(마태 10, 5-6)고 하심으로써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선포가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사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들도 유대지역에 먼저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나 사도 시대에 선민(選民)으로 자처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복음 전파의 대상은 확대되어 이제 이방인까지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한 이방인 여인을 내세워 그녀의 믿음이 어느 유대인보다도 뛰어남을 밝히면서 이방인 선교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강조합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이 여인은 '시로페니키아 출생'이었고(7, 26), 마태오 복음에서는 '가나안 여인'이므로(15, 22) 두 복음 모두 이 여인이 이방인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이방인을 가리켜 "개"라고 부르면서 경멸했습니다. 여기서 "개"는 집에서 기르는 개가 아니라 거리를 떠도는 사나운 개를 말합니다. 예수께서 "강아지"라는 용어를 쓰셨기에 유대인들이 쓰는 용어, "개"와는 달리 이방인 여인을 경멸하시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직접 비유로 알아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빵"이란 그분이 행하시는 치유와 구마등의 복음선교 활동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뜻은 당신의 복음선교 활동이 우선적으로 유대인들에게 행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질문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풀이하자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지 이방인들에게는 하시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아니면 적어도 유대인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하지만 이 이방인 여인의 대답은 놀랍습니다. "상 밑에 있는 강아지들도 아이들이 먹다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얻어먹지 않습니까?"(마르 7, 28). 예수님은 당신에 대한 굳은 믿음을 지닌 여인,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자비를 알아 본 이방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서 돌아가 보아라. 마귀는 이미 네 딸에게서 떠나갔다"(마르 7, 29).

13. 복음에 나오는 "낙타와 바늘귀" 비유(마르 10, 25; 마태 19, 24; 루가 18, 25)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공관복음 모두에 나오는 이 비유의 뜻을 알기 위해서 앞 뒤 문맥을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마르코 복음을 중심으로 해서 보겠습니다.

이 격언은 "부자는 구원받기 어렵다"(10, 23-27)는 대목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 바로 앞에 "부자 청년 이야기"(10, 17-22)가 나오고, 뒤에는 모든 것을 포기한 제자들이 "백배의 상"을 받을 것이라는 대목(10, 28-31)이 있습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10, 21) ----을 듣고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간 뒤에 제자들에게 부자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설명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드셨습니다.

이 비유는 한 마디로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불가능함'을 나타낼 때 쓰는 과장법입니다. 낙타는 팔레스티나에서 짐나르는 짐승 중에서 가장 큰 짐승이고, 바늘은 가장 작은 인공 기물입니다. 극대와 극소를 대조시킨 것이지요. 유대 랍비 문헌에 보면 이것을 더 과장하기 위해서 "코끼리가 바늘귀로 들어간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아무리 큰바늘이라도 낙타가 통과할 수 없듯이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란 단순히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가 너무나 불가능함을 강조하는 것 같아서 이 말씀을 다소 부드럽게 해석해 보려는 시도가 더러 있었습니다. 바늘귀란 은유인데 아주 큰 성문을 통하지 않고도 출입할 수 있게 따로 만든 작은 문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 탄생 대성전 출입구 같은 것이지요. 사람은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낙타, 특히 짐을 실은 낙타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고 큰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어로 낙타를 의미하는 단어 "카멜로스"(kam los)와 밧줄을 의미하는 "카밀로스"(kamilos)가 그 모양과 소리가 유사함을 지적합니다. 그렇게 되면 낙타가 아니라 밧줄이 되는 것이지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밧줄이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바늘귀가 작은 문을 가리키든, 카멜로스가 아니라 카밀로스든 모두 다 불가능함을 뜻하지요.

문제는 "부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지만, 그것보다도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 전적으로 그 재산에 의지하고 하느님을 멀리하거나 소홀히 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재산이 없더라도 그 마음과 관심이 재산에만 가 있다면 그 역시 부자가 갖는 위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이 비유는 부와 재물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하느님과 맘몬이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는 가르침입니다.

14 "칼이 없는 사람은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 가지고 가거라"(루가 22, 36)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루가 복음 22장 36절만을 가지고 해석을 한다면 올바른 답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 절이 속해 있는 단락 전체와 앞 뒤 문맥을 살펴보아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참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절(36)은 루가 22장 35-38절의 단락에 들어 있습니다. 이 단락은 루가 복음에만 있는 소위 루가의 특수전승입니다. 루가는 최후만찬 설화 맨 끝에 이 단락을 두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실 당시를 상기시키십니다. "다닐 때 돈주머니도 식량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 것이며 누구와 인사하느라고 가던 길을 멈추지 말라"(10, 4). 초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스라엘을 선교할 때 예수님의 명령대로 아무 것도 가지고 다니지 않았지만 백성들이 환대했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루가 22, 36). 그러나 부활 후 교회시대에 이르러 사도들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지중해 각지에서 전도할 때는 초기선교 때와는 달리 백성들이 사도들을 홀대했기 때문에 위에서 지적한 것들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더욱이 노상에서 강도나 맹수들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칼"까지 준비하라고 이르십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실제로 칼을 준비하라고 하셨을까요? 아무래도 이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상징적인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뒤에 나오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께서 체포되시는 순간에 제자 한 사람이 칼을 휘두르자 그것을 말리시며 귀잘린 대사제의 종을 낫게 해 주신 것을 볼 때(22, 49-51) 예수께서 칼로 무장하라고 하시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말씀은 "모든 어려움과 위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말씀을 그대로 알아듣고 칼 두 자루를 내어놓았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은 "그만하면 되었다"(38절=넉넉하다)고 하셨습니다. 마치 '두 자루의 칼이면 충분하다'는 뜻으로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이고, 그런 뜻으로 해석하는 성서학자들도 있습니다만 그런 뜻이 아니고 칼 이야기는 이제 충분하니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는 일종의 꾸지람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몰이해에 대해 쓴웃음을 지으시며 말씀하신 것이지요.

루가 복음 22장 35-38절은 예수 부활 이후에 교회시대의 사도들과 선교사들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를 보여주는 전교체험담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단단히 정신무장을 해야 했는지를 "칼"의 비유로써 들려주는 것입니다.

15. "저주받은 무화과나무"(마르 11, 12-14. 20-21 참조; 마태 21, 18-19) 이야기를 보면 무화과나무가 열매 없이 잎사귀만 무성한 것은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마르 11, 13).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이 나무를 저주하셨는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성서를 해석할 때는, 적혀 있는 사실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안에 담겨 있는 복음사가의 의도를 파악해서 받아들일 필요도 있습니다.

무화과나무 저주 이야기를 글자 그대로, 있는 사실 그대로 해석하면 당연히 질문자의 질문이 나올 법하고 어떤 답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구약성서에서 그 상징적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 예수께서 그 전날 열두 제자와 함께 베다니아로 가셔서 대접을 받으셨을 텐데 왜 굶주리셨다는 것일까? 왜 예수님은 굶주리셨고 열두 제자들은 굶주리지 않았는가? 어떻게 나무를 사람 대하듯 하셨을까? 등등입니다. 더욱이 무화과 철도 아니었다는데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 있단 말인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지. 나무가 말을 못해서 그렇지 나무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억울할 데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고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무화과 철이 아니었다"(마르 11, 13)는 말은 분명히 마르코 복음사가가 첨가한 것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마태오 복음(21, 18-19)에는 아예 이런 말이 없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이 말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삭제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구약성서에서 무화과나무와 그 열매에 대한 상징적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호세아 9장 10절을 보면 이스라엘을 "맏물 무화과(열매)"라고 부릅니다. 예레미아 예언자는 환시 가운데 무화과가 담긴 두 개의 바구니를 봅니다(24, 1-10). 한 바구니에는 맏물처럼 썩 좋은 무화과가 담겨 있었고, 다른 바구니에는 먹을 수 없이 썩은 무화과가 담겨 있었습니다. 한 바구니에 담겨 있는 무화과는 충실하게 살면서도 추방당한 사람들을 상징하고, 다른 바구니에 담긴 무화과는 고향에 남은 불충실한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을 무화과나무에 비기면서 탄식하는 미가 7장 1절 이하가 우리가 보고 있는 마르코 복음의 본문과 가깝습니다: "아, 답답하구나. 여름 과일을 따러 나섰다가, 포도송이를 주우러 나섰다가, 먹을 만한 포도송이 하나 얻지 못하고, 먹고 싶던 맏물 무화과 하나 만나지 못하듯"(예레 8, 13참조). 여기서 미가 예언자가 말하는 것은 경건한 자들과 성실한 자들이 그 나라에서 사라지고 모든 인간들이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무화과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 상징을 우리의 단락에 도입하면 그 의미가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마르코 복음의 무화과나무 저주사화의 앞 뒤 문맥을 보면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일 궁리를 하였고(11, 18),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들과 종일토록 치열한 논쟁을 벌이셨습니다(11, 27-12, 37). 논쟁 후에 예수께서는 성전을 떠나시면서 예루살렘 성전이 깡그리 파괴되리라고 예고하셨습니다(13, 3). 마르코 복음은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을 배척한 일련의 과정 한 가운데 바로 이 무화과나무 저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배척한 이스라엘은 이제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말라비틀어진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이 하느님께로부터 선택된 백성이라는 특권을 잃어버렸고 그 특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넘어갔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제 개별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판결이 내려진 것이 아니라 구원사적인 차원에서 볼 때 "선택받은 하느님의 백성"의 역사는 종결되고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으로 섬기는 백성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거역하는 것은 그분을 보내신 주 하느님을 거역하는 것이요, 주 하느님께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는 심오한 진리가 담겨 있는 상징적인 예화입니다.

16. 마르코 복음 12장 35-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시편 110장 1절을 인용하시면서 "이렇게 다윗 자신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마르코 복음의 이 단락은 마태오 복음(22, 41-46)과 루가 복음(20, 41-44)에도 있습니다. 소위 공관복음 전승이지요. 먼저 이 단락이 마르코 복음서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보도록 합시다. 마르코 복음 11장 27절 이하에서부터 시작된 질문과 논쟁에서 대사제, 율법학자, 원로(11, 27), 바리사이파, 헤로데 당원(12, 23), 사두가이파 사람들(12, 18), 즉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이 모두 예수께 몰려와 어떻게 하면 "트집을 잡아 올가미를 씌울까 하고"(12, 13) 총공세를 취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모든 대답을 지혜롭게 하셔서 그들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순수한 인간적인 메시아의 기원에 관해 그들의 가르침과 사상을 반박하셨습니다. 복음에서 보면 위 구절은 질문과 논쟁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당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성서는 약속되어 있던 메시아(=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이사 9, 2-11; 아모 9, 11; 호세 3, 5; 예레 23, 5; 30, 9; 33, 15.17.19; 에제 34, 23; 37, 24; 즈가 12, 8 등). 그렇기 때문에 루가 복음 3장 31절과 마태오 복음 1장 1.6절에서는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이 메시아 사상은 지상적이었고 상당히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지배하에서 해방시키고, 온세계의 종교적, 정치적 중심으로 건설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분이 바로 다윗의 자손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다윗이 저자라고 여겼던 시편 110장을 인용하시면서 분명히 메시아는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있던 "다윗의 후손" 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메시아 사상을 초월적인 사상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시편 110장에서 다윗은 메시아를 자기의 "주"라고 부르고, 또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계신 이"로 묘사하면서, 메시아에 대하여 무엇인가 보다 높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주장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거나 혹은 당신이 다윗의 자손이 아니시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다윗 자신이 메시아를 이만큼 하느님 가까이 계신 분으로 고백했다면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이다"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더 초월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사상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는 "다윗의 자손"으로 섬김을 받았지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섬김을 받았습니다(로마 1, 3-4). 그 논거로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는 "다윗의 자손"이라 할지라도 부활하여 드높게 되신 천국에서는 오히려 "다윗의 주님"이라고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 주장이 마르코를 위시한 공관복음의 전승이 되어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17. 마태오 복음의 혼인 잔치의 비유(22, 1-14)의 끝에 보면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가 임금으로부터 추방되어 벌을 받는데 여기서 이 사건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비유 끝에 나오는 이 부분(마태 22, 11-14)만을 볼 것이 아니라 비유 전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는 루가 복음 14장 15-24절에도 나옵니다. 마태오 복음의 것과 비교 . 대조를 해 보면 많은 공통점과 상이점을 발견할 수 있지만 두 비유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골자는 같습니다.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풀고 종들을 두 번이나 보내어 초대받은 사람들을 불러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핑계를 대면서 오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종들을 붙잡아 때려 주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임금을 군대를 풀어서 그 살인자들을 죽이고 동네를 불질렀습니다. 그대신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불러 그 잔치에 오게 했는데 그 중에는 좋은 사람도 있었고, 나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임금은 하느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 잔치는 종말에 이루어지는 구원을 뜻합니다. 임금이 보낸 종은 구약시대에는 예언자, 신약시대에는 사도들을 뜻합니다. 그럼 잔치에 먼저 초대된 이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그 지도자들, 대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선민으로 자처하면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와 그분의 길을 걷도록 초대한 예언자들과,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배척하고 죽였습니다. 이에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그 지도자들을 벌하시고, 그들이 더 이상 초대받을 자격이 없음을 선언하셨습니다(마태 22, 7-8). 그 이후에 초대된 사람들은 이스라엘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제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18. 그러면 앞의 비유(마태 22, 1-14)에 끝에 보면 임금이 자기 아들 혼인 잔치에 초청한 사람들이 오지 않자 길에 있던 온갖 사람들을 다 초청해놓고는 어떤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해서 손발을 묶어 밖으로 내어쫓고 벌을 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겠습니까?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의 비유'는 마태오 복음에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비유는 본래 따로 전해져 내려오던 것을 마태오가 '혼인 잔치의 비유' 끝에 덧붙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비유 전체의 흐름으로 보자면 이것은 상당히 비논리적이고 모순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길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초청을 받았는데 어떻게 예복을 갖추어 입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은 앞의 '혼인 잔치의 비유'와 연결시켜 보아야 마태오가 이런 모순에도 불구하고 뒤의 비유를 첨가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임금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초대를 거절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멸시하고 그 대신 이방인들을 구원의 잔치에 초대했습니다. 그런대 초대교회에서 이 비유를 잘못 해석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쁜 사람이나 좋은 사람이나 누구나" 교회로 불러들이는 과정에서 부름을 받고 교회로 몰려온 많은 이방인들이 마음의 준비나, 도덕적 결단이나, 믿음에 합당한 열매맺음도 없이 교회의 생활을 계속하는 것에 대한 경계와 경고로서 "예복"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된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구원의 잔치에 초대를 받고 그에 응답하여 그 잔칫상에 앉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집, 즉 교회의 식탁에 앉기에 합당한 자가 되려면 복음이 요구하는 어떤 '행동적' 요구에도 응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 비유에서 말하는 예복이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예복은 구약성서에서 '구원의 옷'입니다. 묵시문학에서는 의인들과 선택된 자들이 입을 '영광의 옷'이지요. 마태오 복음에서 우의적 의미를 따진다면 혼인예복은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행함(7, 24.27), 아버지의 뜻을 행함(7, 21), 의로움을 행함(3, 15; 5, 20), 사랑의 이중계명을 행함(22, 34.40), 자비를 행함(25, 31-46)을 뜻합니다. 그렇게 행하는 이만이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한다면 혼례복을 입지 않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주님" 부르짖기만 하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자들입니다(7, 21-23). 이들은 모두 종말에 단죄를 받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회개하고 예복을 입어라. 구원의 때, 곧 잔치는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준비를 못한 자에게는 화가 미칠 것이다'라는 경고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이미 잔칫집에 들어가 있고, 풍성하게 차려진 잔칫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잔칫상에 맞갖은 손님이 되기 위해 언제나 생명의 향기(2고린 2, 16) 그윽한 예복을 준비해야겠습니다.

19. 예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질책하시면서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말아라. 이 세상의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아라.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말아라"라고 하셨는데(마태 23, 8-10)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이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질책하신 이유를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위선과 권위주의를 질타하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열심'을 외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성구갑'과 옷단의 술을 크고 길게 했습니다. '성구갑'이란 양피지에다 구약성경 구절들(주로 출애 13, 1-16; 신명 6, 4-9; 11, 13-21)을 적어서 역시 양피지로 만든 작은 성냥갑 크기의 통에다가 넣은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항상, 어떤 이들은 기도할 때만 이 성구갑을 이마와 왼팔 윗부분에 묶습니다. 즉 머리로 율법을 생각하고, 왼팔 윗부분이 맞닿는 심장으로 율법을 사랑하겠다는 상징적인 행위이지요. 그런데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자신들의 결속관계를 드러내는 표지로 성구갑을 크게 만들었습니다. '옷단의 술'은 유대인들이 민수 15, 38-39; 신명 22, 12의 규정에 따라 야훼의 명령을 기억한다는 외적 표지로 겉옷 옷단 네 곳에다 달고 다닌 흰 실과 푸른 실로 꼰 술을 가리킵니다. 율법학자들은 남들에게 보이려고 이 술도 길게 늘였습니다.

율법학자가 잔치 집에 오면 사람들은 그를 정중히 모셨습니다(루가 14, 7-10 참조). 백성들은 거룩한 지식의 전달자이며 교사인 율법학자들을 옛 예언자들을 존경하듯이 했고 경외심마저 가졌지요. 그들의 말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습니다. 율법학자들이 앞에 오면 백성들은 공경하는 태도로 일어섰으며, "으뜸가는 자"요, "랍비", "아버지", "주"라는 칭호로 부르면서 일손을 멈추고 정중하게 인사했습니다.

위 구절은 마태오가 위선자들을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자들과 당시 교회의 생활에 적응시킨 것입니다. 마태오가 소속된 교회에는 그리스도교계 랍비(율법학자, 선생)들이 있어서 가르치는 일을 맡았습니다(13, 52; 23, 34). 신자들은 그 랍비를 유대교에서 율법학자들을 부르던 그 호칭으로 불렀습니다. 즉 '아버지'(아빠, 아비) 혹은 '스승', '선생님'(랍비)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도 역시 인간적인 모임이라 더러 폐습과 부작용이 있는 법. 그리스도교계 랍비들도 유대교 율법학자들 마냥 자기들의 지식을 내세워 특권을 누리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태오는 이를 비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홀로 교회의 스승이실 뿐 그리스도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형제들이며, 또 그리스도의 만년 제자들이라는 주장을 펴기에 이르렀습니다.

또 마태오의 교회에서는 교직자들을 '아버지'라고 불렀던 모양인데 이런 존칭을 금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을 낳아주신 육친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랍비들, 교직자들, 유랑 선교사 등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차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성부 한 분뿐이시고, 땅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다 성부의 자녀들이라는 것입니다. 10절의 '지도자'라는 칭호도 8절의 '스승'의 칭호와 같이 해석해도 무방하겠습니다.

20. 복음에 보면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이 군중들이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책망하시면서 "독사의 족속들아" 하십니다(마태 23, 33; 3, 7; 12, 34; 루가 3, 7). 과연 그분들이 직접 이런 말씀을 하셨으며, 그 표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복음에 있는 어떤 표현이나 말투가 너무나 지나쳐서 과연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직접 하셨을까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독사의 족속들아"하는 말투입니다. "뱀"이니 "독사"니 하는 말은 틀림없이 부정적이고 끔찍한 표현입니다. 요즈음도 누가 상대방에게 이런 표현을 한다면 결코 좋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독사의 족속"이라는 표현은 마태오 복음에 세 번(3, 7; 12, 34; 23, 33), 그리고 루가 복음에 한 번 나옵니다(3, 7).

마태오 복음 3장 7절과 루가 복음 3장 7절은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받으려고 오고 있는 군중들에게 한 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군중들이 상황을 바로 깨닫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생각한 것과 대조를 이루기 위해서 "독사의 족속"이라고 했습니다. 이 표현은 악하고 파괴적인 성격을 지닌 무리를 일컫는 것입니다(이사 11, 8이하; 14, 2; 30, 6). 그러니 세례자 요한이 이 말을 직접 사용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한편 예수께서는 이 표현을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적용하셨습니다(마태 23, 33).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 시대에 바리사이들은 아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오직 율법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려고 애썼던 만큼 그들은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대우를 받았습니다(마태 23, 6-7). 그런데 왜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큰 비난과 호된 책망을 받아야만 했을까요?

여기에는 복음서가 기록된 1세기경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당시 그리스도교를 전도하던 선교사들과 유대교의 율법을 지키려는 바리사이들 사이에 거센 논쟁이 늘 있었습니다. 이는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삶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그들과 바리사이들 사이의 논쟁을 예수님과 바리사이들과의 논쟁에도 소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입을 빌어 바리사이들은 "독사의 족속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표현들은 참된 길을 일러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적대시했던 유대교 세력 간의 갈등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직접 이런 표현들을 사용했을 가능성은 희박하지요.

21.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드는 법이다"(마태 24, 28; 루가 17, 37)는 무슨 뜻입니까? 주님이 계신 곳에 믿는 무리가 모여든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시체가 사람의 아들이시고 독수리가 신자인가요?

한 마디로 굉장히 난해한 구절이고 또 여기에 대한 해석도 다양합니다. 본래 이 말씀은 필연성을 뜻하는 속담이었을 것입니다(욥기 39, 30 참조). 질문하신 분의 말씀처럼 꼭 '시체가 인자이시고 독수리가 신자'라고 직접 비교를 할 필요는 없지만,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들듯이 사람의 아들이 내림하는 곳에 모든 민족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라는 당연성 내지 필연성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해서 이 말마디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말마디 앞뒤의 정황과 배경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태오 복음에 따르면 올리브 산에서 예수께서 성전의 멸망과 세상의 종말, 그리고 인자의 내림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제자들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주님께서 오실 때와 세상이 끝날 때에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시체와 독수리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루가 17, 20 참조). 예수께서는 성전의 멸망에 관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세상의 종말과 인자의 내림에 대해서도 언급하십니다. 성전 멸망은 어느 한 곳에 국한된 것이지만, 인자가 내려오는 날에는 세상 전체에 종말이 온다는 것이지요. 마치 "동쪽에서 번개가 치면 서쪽에서 번쩍이듯이" 사람의 아들의 내림도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바로 이어져 나오는 구절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여드는 법이다"라는 말씀은 사람의 아들의 내림이 누구나 알 수 있게 공개적으로 이루어 질 것임을 나타내는 듯 합니다. 하늘에 떠도는 독수리를 보고서 무슨 일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듯이, 사람의 아들이 내려오는 때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무난할 것 같습니다.

혹은 예루살렘 멸망이 생각지도 않을 때에 일어났듯이 세상의 종말과 사람의 아들이 내려와 심판하시는 것도 그렇게 일어나리라는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듯합니다. 마치 독수리가 먹이를 보고 재빠르게 모여들듯이 순식간에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지요.

22. 마태오 복음 25장 1-13절의 열 처녀의 비유에서 그들이 가진 등불과 기름은 무엇을 뜻하며, 왜 슬기로운 처녀들이 어리석은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누어주지 않습니까? 이는 예수님께서 강조하셨던 '형제 사랑'의 계명에 위배되는 것이 아닐까요?

마태오 복음의 이 비유의 참 뜻을 잘 알아듣기 위해서 먼저 예수님 당대의 이스라엘의 결혼 풍속도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약혼을 함으로써 법적 혼인이 성립됩니다. 약혼기간은 약 일 년쯤 되는데 그 동안 약혼자들은 합법적인 부부이기는 하지만 부부생활을 하지 않고 신부는 그냥 친정 집에서 눌러 삽니다. 그러다가 혼행 때가 되면, 저녁 때 신랑이 남자 친구들과 함께 신부집으로 신부를 데리러 갑니다. 이때 신부의 여자 친구들이 등불이 아니라 헝겊으로 만든 횃불을 들고 신랑 일행을 마중 나갑니다. 신랑이 신부를 자기 집에 데려감으로써 결혼식이 시작되지요. 신부의 친구들은 신부를 신랑집까지 데려다 주고, 집안 마당에서 횃불이 꺼질 때까지 춤을 추고 흥겨워합니다. 하객들도 신랑집에서 밤새도록 혼인잔치를 벌입니다. 잔치는 무려 한 주간 동안 계속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열 처녀는 신부 측의 들러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등잔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등잔'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결혼 풍속도를 보면 이 등잔은 긴 막대기 끝에 헝겊을 매달고 거기에 올리브 기름을 묻혀 불을 밝히는 횃불을 가리킵니다. 막대기에 달린 헝겊을 기름에 적셔야 하니까 기름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나 등불이라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흔히 바람막이가 달린 등잔에 불을 붙여 오래 지탱하려면 따로 기름을 준비해야 할 것이니까요.

그런데 열 처녀 중 다섯은 횃불(혹은 등잔)과 함께 기름을 준비했지만, 나머지 다섯은 기름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본문은 전자를 '슬기롭다'고 하고 후자를 '미련하다'고 합니다. 신랑의 도착이 늦어지자 이 열 처녀는 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온다'는 소리에 모두 놀라 일어나 제각기 등불을 챙겼을 때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던 미련한 다섯 처녀들의 등불은 꺼져가고 있었으나 기름은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동료들에게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기름을 좀 나누어다오'라고 했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만일 기름을 나누어주면 자기들에게도 기름이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은 왔고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갔고 문은 굳게 잠겨졌습니다.

마태오는 이 비유를 초대교회에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초대교회 공동체 신자들은 부활하시어 떠나가신 예수님께서 곧 다시 그들에게 오시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신랑은 재림하실 그리스도이시고, 열 처녀들이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그 중 다섯 슬기로운 처녀들이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이요, 어리석은 다섯 처녀들이란 듣고도 지키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마태오는 공동체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이 연기되기는 하지만 예기치 못한 시기에 반드시 닥칠 것이니 착한 행실로 준비해야 한다고 가르치기 위해 예수님의 비유를 전합니다. 이 착한 행실이 바로 열 처녀들이 준비해야 할 '기름'으로 비유되었습니다.

이렇게 기름이 나타내는 것이 '착한 행실', 구체적으로 '이웃 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에 슬기로운 처녀들은 미련한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누어주고 싶어도 나누어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기름, 착한 행실은 나누어주고 받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자신이 준비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3. "잘 들어두어라.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 날까지, 나는 결코 포도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다"(마르 14, 25; 마태 26, 29; 루가 22, 18)는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예수께서 최후 만찬 석상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최후 만찬 끝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지요. 이 말씀을 하신 후 예수님과 제자들은 <찬미의 노래>를 부른 다음 올리브 산으로 갔으니까요. 예식에 따라 예수께서도 포도주를 잡수셨을 것이고 그리고 나서 이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먼저 이 말씀은 예수님의 운명에 대한 확신에 찬 말씀입니다. 이제 '운명의 시각'이 절박하게 다가오고 있지만 그것은 끝이나 실패가 아니라 영광이요 승리라는 확신에 가득 찬 말씀입니다. 이 확신은 말씀 서두에 있는 '아멘'(공동번역에는 '잘 들어두어라'라고 되어 있지만)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아멘'이라는 말이 13번 나오는데 여기에 사용된 '아멘'이 열두 번째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께서는 항상 진실을 알리시거나 확신에 차서 말씀하실 때 '아멘'으로 시작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이 말씀으로써 방금 제자들과 함께 거행하셨던 최후 만찬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설명하십니다. 즉 이 만찬은 영원한 단절상태를 대비한 단순한 기념행사가 아니라 재회를 약속하는 잔치라는 것입니다. 이 만찬은 당신의 죽음과 동시에 영광스러운 도래를 예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결코.... 마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이제 이 세상에서 두 번 다시 포도주를 마실 수 없을 만큼 당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미래에 있을 희망과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강력하게 드러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새 포도주"란 지극한 사랑 자체인 영원히 새로운 것, 사람의 눈으로 일찍이 본 적이 없고, 그 귀로 들은 적도 없는, 그리고 일찍이 맛본 적이 없는 하느님의 영원한 기쁨이 흘러 넘치는 새로운 잔을 말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께서 베푸실 "새 포도주"를 마실 그 잔치에 지금 이 지상에서 최후 만찬에 참석했던 예수님과 제자들이 다시 모일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사실 예언자들(이사 25,6)과 묵시문학에서 메시아적 구원이 완성될 때가 기쁨의 식사로 서술되기도 했고 꿈란 수도자들도 사제적 메시아가 오시어 종말의 식사를 주재하기를 기대했었습니다.

24.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요한 19, 25)라는 말씀에서 이모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는 누구이며, 왜 십자가 아래 초대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의 번역에 따르면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는 네 여인이 서 계신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리스 원문에 따르면 그리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를 봅시다. 공동번역과는 달리 200주년 기념 새번역에는 "아내"라는 표현을 괄호 안에 묶어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 원문에는 "아내"라는 말이 없고 단지 소유격을 써서 "글레오파의"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마리아"라는 여인은 글레오파라는 남자에 대해 혈연상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딸"도 될 수 있고, "누이동생"도 될 수 있고, 또 공동번역처럼 "아내"도 될 수 있습니다.

만일 마리아가 글레오파의 "아내"가 아니고 "딸"이거나 "누이동생"이었다면 예수님 십자가 아래 서 있었던 여인들에 대해 여러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먼저 십자가 아래에 두 여인이 서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앞에 언급된 두 여인과 뒤에 언급된 두 여인을 동격으로 보는 경우이지요. 그러면 예수의 어머니=글레오파의 딸(혹은 누이) 마리아, 이모(원문에는 "그녀의 여동생")=막달라 여자 마리아.

그다음으로는 세 여인이 서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예수의 어머니, 이모(그녀의 여동생)=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여자 마리아.

네 여인이 서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우리의 번역과 같이 예수의 어머니, 이모(그녀의 여동생),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여자 마리아입니다. 일반적으로 요한 복음 저자가 독자들에게 네 여인이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서 있었다고 언급한 것으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이 네 여인은 바로 직전의 네 병사들(19, 23)과 좋은 대비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후 네 병사들은 예수님의 옷가지를 가져다가 분배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지만, 십자가 아래에는 예수님을 철저히 믿고 따랐던 신심 깊은 네 여인이 예수님의 죽음을 애도하며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예수님의 참되고 이상적인 제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복음서 저자의 관심은 오직 예수의 어머님께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제 그분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의 어머니가 되실 것이고, 그 제자는 그 어머니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이모"는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마르 15, 40)로 여기고 있습니다. 글레오파가 누구인지 확실히 모르지만(루가 24, 18 참조) 역사가 헤제시푸스(Hegessipus)에 따르면 그는 예수님의 양아버지인 성 요셉의 형제로, 예루살렘 주교로서 의로운 사람이며, "주님의 형제"라고 불렸던 야고보의 뒤를 이은 시메온의 아버지라고 합니다(에우세비오, 교회사 IV, 12, 4; III, 32, 6).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 있던 네 여인의 이름이 모두 "마리아"라는 사실입니다.

25.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처음에는 제자들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나중에 가서야 알아보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부활하실 때 그 순간을 지켜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지 안식일 다음날 새벽에 몇몇 여인들이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을 때 그분의 시신은 더 이상 무덤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요한 20, 1-10). '그분의 시신이 어디로 사라졌을까' 하고 고심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당신이 다시 살아나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한편 기뻐하면서도 도저히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마르 16, 11; 루가 24, 41; 요한 20, 24-29 도마의 불신앙 참조). 그래서 예수께서는 마음이 완고하여 믿지 않으려는 제자들을 꾸짖으시기도 하셨고(마르 16, 14), 유령이 아니라 당신이시라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제자들 앞에서 음식을 잡수시기까지 하셨습니다(루가 24, 42-43).

그런데 몇몇 군데에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셨을 때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하다가 나중에 가서야 그분임을 알아보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루가 복음 24장 13-35절의 엠마오의 제자들과, 요한 복음 20장 11-18절의 막달라 여자 마리아 이야기에 있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전과는 완전히 달라져서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아니면 이미 천상적 존재가 되셔서 그랬을까요? 성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변화되었거나 다른 모습을 취한 쪽은 예수님이 아니라 제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불신앙, 실망, 그리고 자기 아집이라는 틀 속에 갇혀 있었기에 예수께서 성취하신 희망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그분을 알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제자들의 인간적인 힘으로는 될 수 없고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주도권은 항상 예수께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은 처음에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성경을 해설해 주실 때 처음으로 느꼈으며, 빵을 떼어 주실 때 비로소 그분을 알아보았으며, 막달라 여자 마리아도 처음에는 모르다가 예수께서 "마리아"하고 부르시자 그분을 알아보고 "선생님"하고 대답했다는 이야기 속에서 이런 사실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엠마오의 제자들의 눈이 열리어 예수를 알아보았을 때 그분은 사라지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오관으로 포착할 수 없는 분이시며 육안으로 보려는 순간 이미 사라지셨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분은 항상 그리스도 신자들과 함께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그분을 느끼거나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분을 믿고 찾는 자에게 당신 자신을 알아보도록 나타내 보이신다는 것을 말하는 깊은 신학입니다.

26. 창세기 1장에서 빛과 어둠(4절), 낮과 밤(5절), 밝음과 어둠(18절)은 각각 어떻게 구별해야 합니까?

공동번역성서에는 1장 18절에서 "밝음과 어둠"이라고 했지만 히브리 원문에서는 4절과 같이 "빛과 어둠"으로 되어 있습니다(창세기 새번역 참조). 그러므로 "빛과 어둠", 그리고 "낮과 밤"에 대해서만 설명하겠습니다.

1장 4절에서 하느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시기 이전에 이미 1장 2절에 어둠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둠은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이전부터 존재했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빛과 대조를 이루는 어둠은 부정적인 것으로서 하느님의 창조과정에서 제외되었습니다. 1장 2절에서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를 표현하는 자연적인 어둠이 아니라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생물의 존재에 위협을 주는 어둠입니다. 이 어둠은 바로 혼돈(카오스)의 특징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이 어둠 가운데서 우주 만물을 질서 있게 창조하시어 그 혼돈의 상태를 물리치셨습니다.

그런데 우주로부터 혼돈이 없어지려면 먼저 어둠이 없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생명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시기 위해 먼저 빛을 창조하시어 어둠을 없애셨습니다. 빛은 하느님 창조의 첫 작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셨으며 창세기 저자는 빛을 창조한 후에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라고 적었습니다. 빛이 창조되자 낮과 밤이 구별되고 시간이 생겨났습니다. 이 시간 안에서 생명이 창조되었으며, 그 시간(역사) 속에서 빛과 어둠이 엇갈리는 사건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성서에서 빛은 단지 가시적인 광채일 뿐만 아니라 생명과 기쁨에 관련되기도 합니다(욥기 3, 16.20; 시편 36, 10; 49, 29; 56, 14; 이사 9, 1; 60, 1-3.19-20). 빛은 어둠보다도 우월합니다. 빛이 구원과 생명의 표지라면(요한 8, 22; 9, 5; 12, 46 참조) 어둠은 죽음과 멸망의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 창조설화의 저자인 사제들은 빛과 어둠이 나눠짐으로써 낮과 밤이라는 주기적인 흐름이 생겨났고, 이로써 시간과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1, 5). 이것은 바로 세상과 인간이 존속되기 위한 질서가 확립되었음을 뜻합니다. 이 질서 아래서만 창조의 시작과 마침, 창조물의 존속, 자연과 인류의 역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7.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 하셨는데 여기서 "우리"란 누구입니까? 창세기를 서술할 당시에는 하느님의 존재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여러 신으로 존재했습니까?

창세기 1장 26절이 들어 있는 첫 번째 창조설화(1, 1-2, 4a)는 사료가설 이론에 따르면 사제계 문헌에 속하는 사료입니다. 사실 1장 26절은 이 첫 번째 창조설화 중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신앙에서 볼 때 하느님은 오직 한 분뿐이신, 유일신이신데 어찌하여 복수 1인칭을 사용해서 "우리가 ........ 하자"는 표현양식을 썼을까 하고 학자들 사이에도 논란이 많았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이 표현이 삼위일체가 암시적으로 계시된 것으로, 또는 왕들의 장엄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아무래도 무리한 견해로 보입니다. 특별히 삼위일체는 훨씬 후대에 나온 신학이니까요.

3장 22절에서도 다시 볼 수 있는 복수형 주어 "우리"는 고대의 왕들이 회의를 할 때 신하들을 거느리고 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천상조정의 관리들인 천사들과 상의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상적 존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표상은 구약성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시편 8, 5; 1열왕 22, 19이하; 욥기 1, 6; 이사 6, 8).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엘로힘"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신이었던 "엘"의 복수형태인데 이렇게 복수형태를 취함으로써 하느님의 위엄과 충만성을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사제계 문헌의 저자인 사제들은 하느님께서 억조창생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분으로 계시고, 또 그분의 이름을 복수형태로 함으로써 경신례 안에서 하느님의 천상적 위엄을 최대한 높이려고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셨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28.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지어내시고 처음 하신 말씀이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 모든 짐승을 부려라"(창세 1, 28) 하셨는데 왜 그렇게 하셨는지요? 가령 "나에게 감사하라. 서로 사랑하라"등 다른 말씀이 있을 것 같은데......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되어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작품이기에 저술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저술 당시 저자나 동시대인들이 하느님의 축복으로 여기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탈출하여 가나안 땅을 얻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손바닥만한 땅조차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막강한 군대의 위력도 실감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축복은 광활한 땅과 수많은 후손이었습니다. 특히 아들은 노동력이나 군사력을 증강시킬 수 있었기에 귀한 존재였습니다. 후손을 통하여 자신들이 하느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사제계 저자가 전해주는 원역사에는 이와 같은 하느님의 축복 말씀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1, 28), 노아와 그의 아들들과(8, 17; 9, 1) 성조들에게(28, 3; 35, 11; 47, 27; 48, 4) 하느님은 같은 내용의 축복을 내리십니다. 이와 같이 거듭되는 것은 창조물의 유지 보존에 대한 그분의 깊은 사랑과 관심, 나아가 지속적인 창조 사업이 그분의 축복때문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땅 위에 돌아 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1, 28)에서 "부려라"는 "다스려라"는 뜻입니다(창세기 새번역 참조). 이 말은 축복과 권위의 위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상'대로 만드신 인간에게 땅과 자연을 위임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목자요 관리자로서의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만일 요즈음 창세기가 쓰여진다면 하느님의 축복을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질문자의 말씀대로 '감사와 사랑'을 요구하셨을 수도 있겠지요. 분명히 다른 형태의 축복이 주어졌을 것입니다.

29. 출애 4,24-26; 야훼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에서 해방시키기로 계획하셨는데 모세가 특별히 죄를 지었다는 내용도 없이 왜 모세를 죽이려 하셨는지요? 할례를 위한 사건이라고 이해하기는 제게는 무리가 갑니다.

모든 주석서나 해설서에서 이 대목을 설명할 때 맨 먼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대목은 구약(혹은 출애굽기)에서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 중 하나이다. 이 대목의 해석상의 문제는 수세기 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어려움은 히브리어 성서 원문에 있습니다. 성서 원문을 보면 시뽀라 외에는 구체적인 사람이 명기되지 않은 채 전부 대명사 "그"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공동번역과 새 번역에 24-25절에서 "모세"라고 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그"라고 되어있습니다.

히브리 성서 원문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24)노상 야영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야훼께서 그를 만나시고 그를 죽이려 하셨다. (25)그래서 시뽀라는 돌칼로 제 아들의 포경을 자르고 그것을 그의 발에 대며 말하였다. "당신은 내가 피를 흘려서 얻은 나의 신랑입니다." (26)그러자 그는 그로부터 사라지셨다..... 이렇게 되어 있으니 야훼께서 죽이려 하신 이가 모세인지 아니면 그의 아들인지, 시뽀라가 제 아들의 포경을 잘라 댄 발이 모세의 발인지, 아들의 발인지, 혹은 야훼의 발인지 애매합니다.단지 공동번역과 새번역을 포함한 여러 번역본들이 히브리 원문에는 없는 "모세"라는 이름을 넣어서 야훼께서 죽이려 하신 이가 모세이며, 또 시뽀라가 제 아들의 포경을 잘라서 댄 그 발도 역시 모세의 발이라고 보는 것은 본문의 전후 문맥을 고려한 역자들의 주관적 해석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그"가 모세이든 그의 아들이든 야훼께서 그의 가족을 향해서 "살륙적인 공격"을 가하셨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실 모세가 다섯 차례나 완강하게 에집트에로의 파견을 거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에게 강력하게 이집트로 갈 것을 요구하신 야훼께서 이제 미디안을 떠나 이집트를 향하여 결연히 떠나는 모세 가족을 가로막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들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은 앞 뒤 문맥과 비교해 보아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이 대목이 원래 이 자리에 있지 않았고 다른 곳에 들어 있던 일화인데 편집자가 이곳에 첨가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소명을 받고 에집트로 떠나가는 모세에게 가시적으로 예시된 야훼의 상징적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세의 임무가 지닌 신학적 의미가 특별히 부각되는 것이지요.

흔히 말하듯 야훼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신 것은 모세나 그의 아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은 출애굽기 사상에서 볼 때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상이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에집트에서 모세의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출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의 장자였습니다. 야훼의 장자를 구출하기 위해서 에집트인들의 장자들을 죽이신 것입니다. 모세의 가족이 "살륙적 공격"을 당하였지만 시뽀라가 바친 맏아들의 희생물을 통하여 그 가족이 공격으로부터 구출되었다는 것은 에집트에서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 은총은 "피의 할례"를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보여준 야훼의 상징적인 행위라고 해석하면 무난할 것 같습니다.

30. 출애굽기 34장 29-35절에서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쳐다보니 그의 얼굴 살결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으므로 모두들 두려워하여 가까이 가지 못하였다......그래서 다시 야훼와 대화하기 위해 들어갈 때까지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있어야 했다"는 것과 사도 바울로가 고린토 후서 3장 13-18절에서 "모세처럼 자기 얼굴에서 광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백성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너울로 가리는 것 같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라고 한 것의 의미는 무엇이고 서로 어떤 관련을 갖고 있습니까?

먼저 출애굽기(34, 29-35)를 설명하고 나서 고린토 후서를 보겠습니다.

사실 모세의 "얼굴이 빛난 것"에 대한 이야기는 설명하기 힘든 대목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어떤 학자는 모세의 얼굴이 빛나는 것에 대한 전승이 모세 당시 이스라엘에서나 이집트 등에서 사제들이 자기 얼굴에 썼던 가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나 이집트에서 흔히 사제는 신(神)의 이름으로 어떤 것을 말할 때 자신의 얼굴에 가면을 썼습니다. 사제가 가면을 쓰는 행위는 그들이 모시는 신적 존재의 '얼굴'을 씀으로써 그 신적 존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동시에 사제의 말이 바로 신(神)의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구약성서 기록자들은 사제의 가면이 지니는 본래의 의미와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양립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면의 의미를 모세에게까지 소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모세만이 야훼 하느님을 만나 뵈올 수가 있으며, 그럼으로써 그의 얼굴 피부가 빛나게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도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기에 모세가 그의 얼굴에 있는 야훼 하느님의 빛을 가려야 했다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모세 얼굴의 피부 상태입니다. 모세의 빛나는 얼굴 상태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동사(q ran)를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얼굴 살결이 빛나다", "영광스럽게 되다"로 해석할 수 있고, 둘째는 "뿔이 나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자신의 구약성서 라틴어 역본인 『불가타』에서 "그의 얼굴에 뿔이 돋은 것을"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하여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을 비롯하여 교회의 미술에서 머리에 뿔이 난 모세를 그리거나 조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본래의 의미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얼굴의 피부에 "뿔이 나다"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모세의 얼굴이 빛났는데 그 형태가 뿔 모양이었다'고 풀이했지요. 지금 우리의 공동번역이나 새 번역을 위시하여 각종 번역 성서와 대부분의 주석가들도 이 의견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29-35절에서 말하는 '모세의 얼굴의 빛남'은 야훼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고, 그분의 영광이 모세 위에 머물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그의 얼굴이 변모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고린토 후서 3장 13-18절이 속해 있는 3장 1절에서 4장 6절까지의 단락에서 사도 바울로는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새로운 계약의 봉사자들'로서 얼마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직책을 수행하는가를 설파합니다. 사도는 이를 강조하기 위해 '옛 것'과 '새 것', 즉 '옛 계약'과 '새 계약'을 비교.대조합니다. 옛날의 유대교보다 지금의 그리스도교가 월등하고, 옛날 유대교의 모세보다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사도들이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바울로 사도는 출애굽기 34장 29-35절의 모세 이야기를 상기하면서 그때 모세가 자기 얼굴을 가렸던 "너울"이라는 상징을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얼굴에 '너울'이 드리워져 있었듯이(13절), 유대인들의 마음에도 '너울'이 놓여 있어(15절),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중재를 통하여 전달된 율법 체계에 매여 있는 유대인들은 율법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단언합니다. 그러기에 유대인들은 구원계획의 충만한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의 결정적인 구원계획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유대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벗을 수 있는 '너울', 즉 성서를 해석할 수 있는 열쇠인 계시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나 신자들은 율법의 '종말'이자 '완성'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울'을 벗어버렸기 때문에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얼굴의 너울을 벗어버리고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비추어 줍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영광스러운 상태에서 더욱 영광스러운 상태로 옮아가고 있습니다"(2고린 3, 18)라고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로의 해석에 따르면 '모세의 얼굴을 가린 너울'은 잠시 지나가는 하느님의 광채 또는 영광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옛날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은 결국은 사라져 없어졌으나(3, 7) "주님의 영광"(3, 18)은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이니만큼(4, 6) 영원무궁하다는 것입니다. 바울로가 상기하는 첫 계약의 중재자인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과는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너울'을 벗은 모습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빛나는 하느님의 찬란한 광채를 관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이 영광을 선사받아 벌써 지금 영광스럽고 앞으로 더더욱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유대 백성들이나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의 '율법의 전달자'인 모세, "그 후로 이스라엘에서는 두 번 다시 모세와 같은 예언자, 야훼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사귀는 사람은 태어나지 않았다"(신명 34, 10)고 할 정도로 구약의 최고의 인물인 모세도 "새 계약"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나 그리스도인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 사도 바울로의 주장입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의 사도직과 '제자됨'은 위대하다는 것이지요.

31. 성서를 읽다 보면 구약시대에 제물을 바칠 때 "흔들어 바쳤다"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무슨 의미인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제물을 바칠 때 "흔들어 바친다"는 말도 있지만 "쳐들어(받들어) 바친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출애굽기 29장 27절, 레위기 7장 34절, 8장 29절, 10장 14-15절, 민수기 6장 20절 등에 나옵니다. 이 구절들은 모두 사제 임직식 제사나 친교제에서 제물을 바치는 것을 설명하는 단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단락들에서 보면 하느님께 제물을 드리는 사제는 제물은 수양의 갈비를 들고 '흔들어 바치거나' 희생 짐승의 뒷다리를 쳐들어 바치는데 이렇게 바친 제물은 모두 제사를 드린 사제의 몫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볼 때 "흔들어", 또는 "쳐들어" 바친다는 표현은 제의적 용어로서 제사를 드리는 사제의 몸짓을 나타내는 동시에 희생 제물의 가장 좋은 몫을 사제(단)와 그 후손에게 돌려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쳐들어 바치는" 수양의 갈비도 좋은 부위이지만, 희생 제물의 "뒷다리"(혹은 "넓적다리")는 가장 좋은 부위일 뿐 아니라 생식기관, 곧 생명의 신비에 가까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흔들어 바친다"는 것은 사제가 제단 앞에서 봉헌하는 제물을 두 손에 받쳐들고 전후좌우로, 수평으로 흔드는 행위인데, 이것은 하느님께 제물을 드리는 음식물을 식탁 위에 차리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쳐들어 바친다"는 것은 제물을 들고 위로 치켜올리는 행위인데 이것은 하느님께 바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 의미가 있기에 "흔들어 바친 갈비와 쳐들어 바친 뒷다리"가 항상 사람들의 주의를 끈 것이지요. 결국 이 두 행위들은 제물을 바치는 몸짓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제물의 좋은 부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사제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32. 성서에 보면 어떤 특정한 일이 있을 때 "옷을 찢는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행동은 무엇을 의미하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찢습니까?

구약성서나 신약성서에서 볼 수 있듯이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극도의 슬픔이나 분노같은 격한 감정이 일어날 때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창세 37, 29.34; 44, 13; 민수 14, 6; 여호 7, 6; 판관 11, 35; 2사무 1, 2.11; 3, 31; 13, 31; 2열왕 2, 12; 욥 1, 20; 1마카 2, 14; 3, 47; 마태 26, 65; 마르 14, 63; 사도 22, 23).

우선 유대인들은 특별히 사랑하던 사람이나 왕같은 중요한 인물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창세 37, 34; 2사무 1, 11; 3, 31; 13, 31; 욥 1, 20). 야곱은 그의 아들 요셉의 죽음 소식을 듣고 옷을 찢었고(창세 37, 34), 다윗도 사울과 요나단 부자(父子)의 죽음 소식을 듣고 역시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2열왕 1, 11-12). 이것은 극도의 슬픔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또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으면 치가 떨린다는 뜻으로 옷을 찢었습니다(미슈나 산헤드린 7, 5). 유대인 전통에 따르면 신성모독죄는 청중들이 자신의 옷을 찢어 버림으로써 그 죄를 인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대사제에게는 죽은 자를 위한 비통의 표시로 자기 옷을 찢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레위 10, 6; 21, 10). 보통 대사제는 대사제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 옷을 찢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사제도 신성모독의 말을 들었을 때는 옷을 찢었는데 이것은 일종의 제스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시어 대제관 앞에서 재판을 받으셨을 때, "그대가 과연 찬양을 받으실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인가?"라는 대제관의 질문에 "그렇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라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대제관은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마르 14, 61; 마태 26, 65). 예수님의 말씀을 신성 모독으로 본 것이지요.

그러면 어떤 옷을 찢었으며, 또 어떤 모양으로 찢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옷을 찢는 행위는 일종의 예식같은 것이어서 어떤 옷을 얼마만큼 찢는가 하는 것이 이미 다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바지나 외투 같은 것을 찢는 것이 아니고 웃저고리 가슴팍에 약 30센티 가량되는 천을 바느질하여 덧붙여 놓았는데 그 실을 끊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옷이 귀하여 사형수의 옷마저도 나누어 가지는 형편이었는데(요한 19, 23-24) 닥치는 경우마다 옷을 찢었다면 그 많은 옷을 어찌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33. 로마서 14장 2절의 "어떤 사람은 믿음이 있어서 무엇이든지 먹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은 채소밖에 먹지 않습니다"에서 "채소"가 가리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절에서 "채소"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거나 상징적으로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야채"이지요. 그래서 "채소밖에 먹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육식을 하지 않고 채식만을 하는 소위 "채식주의자"를 말합니다.

이 기회에 사도 바울로가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였으며 로마 교회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사도 바울로는 60년 가을에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는 58년 봄 고린토에서 작성되었으니 사도가 로마에 가기 2년 전에 이미 로마서를 발송했지요. 로마 교회는 사도 바울로가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로가 가기 전 이미 로마에는 그리스도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교회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들이 있지만 아마 크게 이름 나지 않은 어느 전도사에 의해서 세워진 듯합니다.

그런데 로마 교회에는 크게 두 부류의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유대계 그리스도인과 이방계 그리스도인입니다. 유대계 그리스도인이란 유대교를 믿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들이니 주로 유대인들이고, 이방계 그리스도인이란 유대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었거나 비신자로 있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비유대인들, 즉 이방인들입니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자주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했고, 유대인들은 그것을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하도 심각하니까 49년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모든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습니다. 자연히 로마 그리스도 공동체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54년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죽고 네로 황제가 즉위한 후 이 추방령이 해제되어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로마 귀환 후 공동체는 그전과는 달리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 갈등의 원인이나 요소들을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로마서 14-15장에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따르면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고기를 먹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으며 채식만을 주장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날짜를 정해서(擇日) 행사를 하거나 기도를 드리며(14, 5; 골로 2, 16 참조) 단식을 하기도 했습니다(디다케 8, 월, 목요일). 이런 이들을 가리켜 "약한 이들"이라고 합니다. 한편 이런 규정들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처신하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을 "강한 이들"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로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배척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화목하게 지내고 사랑하라고 권고합니다.

34. 요한의 첫째 편지 2장 18절에 보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적이 오리라는 말을 들어 왔는데 벌써 그리스도의 적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적"이 가리키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먼저 용어부터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적"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안티크리스토스"를 번역한 것입니다. 여기서 "안티"란 그리스어 전치사로서 "---을 거슬러"라는 뜻을 지니고 있고, "크리스토스"는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거스르거나, 그분의 공동체인 교회, 그 구성원인 신도들을 박해하거나 속이고 미혹해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개인이나 집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안티크리스토스"는 "그리스도의 적" 이외에 "반(反)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원수"라고도 불리기도 합니다. "안티크리스토스"는 신.구약 성경이나 유대문학 등 어느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 낱말로써 요한계 교회에서 처음으로 만든 용어입니다. 그래서 이 용어는 유일하게 요한의 첫째 편지와 둘째 편지에서만 나타납니다(1요한 2, 18.22; 4, 3; 2요한 1, 7). 요한의 첫째 편지에서 "그리스도의 적"은 마지막 때에 올 것이라고 말하면서,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의 적이며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입니다"(2, 22)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둘째 편지에서는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속이는 자들이 세상에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는 속이는 자이고 그리스도의 적입니다"(1, 7)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첫째와 둘째 편지에서 말하는 "안티크리스토스"는 그 당시 교회의 질서와 교리를 어지럽히는 이단자들, 특별히 영지주의자들을 말합니다. 초기 교회에서 이 이단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그들은 요한계 교회에서 생겨나서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며(1요한 2, 19),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곧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1요한 2, 22).

비록 "안티크리스토스"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지만 비(非)요한계 교회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하느님의 적대자들을 가리켜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마르 13, 14 = 마태 24, 15), 거짓 그리스도(들)/거짓 예언자(들)(마르 13, 22 = 마태 24, 24; 마태 24, 11; 1요한 4, 1; 묵시 16, 13; 19, 20; 20, 10), 불법의 사람/멸망의 아들(2데살 2, 3), 또는 악한 자(2데살 2, 8)라고 하였지요.

신약 시대 이후에도 <안티크리스토스> 사상은 계속 발전하였으며 묵시록 같은 데서는 역사적인 인물이나 동시대 사람들과 동일시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반그리스도(그리스도의 적)>를 반드시 어떤 실제적인 인물과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방해하거나,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그 공동체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자연적이거나 초자연적인 악의 화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35. 요한 묵시록에 대해, 그리고 거기에 나타난 상징들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요한 묵시록은 한 마디로 어려운 책입니다. 하지만 모든 세대에 걸쳐 항상 사람들에게 흥미와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요한 묵시록의 난해성 때문에 초세기에 동방교회에서는 이 책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기를 꺼려하기도 했지요. 요한 묵시록을 잘 이해하려면 묵시문학 유형과 거기에 나타난 상징에 대해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 이스라엘 역사는 수난과 비애와 슬픔의 역사였습니다. 또 이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령자와 박해자들로부터 해방을 쟁취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묵시문학이라는 특별한 문학양식이 등장하였는데 이 문학양식을 통하여 그들이 처하고 있는 여러 상황을 심리적으로 그려냈습니다.

특별히 그들의 종말사상을 나타내었는데 그것을 보면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온통 죄악으로 물들어 있기에 도저히 구원받을 수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오직 하느님께서 개입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으로 보았지요. 이 심판날이 악의 자식들에게는 파괴와 심판의 공포의 날이 되겠지만 주님의 자녀들에게는 승리와 영광의 날이 될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밀스런 사실들이 악의 자식들에게 알려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주님의 자녀들만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글을 쓰게 되었고 이것이 새로운 문학유형이 된 것입니다.

요한 묵시록 저자도 이런 문학유형의 영향을 받아 기원후 1세기의 교회와 자녀들이 처했던 상황을 그렸고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러니까 묵시록은 초세기 박해와 어려움에 처해 있던 교회와 그 자녀들에게 언젠가 주님께서 오셔서 악을 쳐부수고 승리하리라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참고 기다리라고 격려한 책입니다.

문제는 묵시록에 사용된 많은 상징들에 대한 해석인데, 사람들이 이 상징들을 종말에 대한 상징으로 보아 그 뒤에 숨겨진 진의(眞意)를 찾으려 하지 않고, 그 상징들을 곧이곧대로 알아듣고 해석하려는 것이지요.

36. 묵시록에 나타난 상징적인 색깔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묵시록에 보면 많은 색깔들이 등장합니다. 그 색깔들을 보면 흰색(15번 사용), 붉은색(2번), 불빛색(1번, 9, 17), 진홍색(4번), 푸른색(녹색, 3번) 등입니다. 그 이외에 보라색(1번, 9, 17)과 유황색(1번, 9, 17) 등도 나타납니다.

중요한 것은 묵시록 저자가 단지 미학적인 의미로 이 색깔들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색깔들을 통해서 어떤 상징을 말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푸른색"은 풀의 자연적인 색깔이나(8, 7 참조), 푸성귀나 나무같은 것들의 일반적인 색을 나타내는 색깔입니다(6, 8 참조). 하지만 일곱 봉인의 장(6장)에서 넷째 봉인을 뗄 때 나타나는 말의 색깔이 바로 이 색깔입니다(공동번역에서는 "푸르스름한"). 묵시록 저자가 이 색깔로 상징하고자 하는 것은 '공포'나 '재앙'이나 그로 인한 '질병'입니다. "붉은색"은 6장 4절에서 두 번째 봉인을 뗄 때 나타나는 말 색깔과 12장 3절에서 용을 서술할 때 쓰이는 색깔입니다. 붉은색은 아무래도 피의 색깔을 나타내기 때문에 전쟁, 피흘림, 폭력을 상징합니다. "검은색"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데 죽음, 기근, 재앙(6, 5 참조)을 상징합니다. "불빛색, 보라색, 유황색" 등의 세 색깔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을 찾기가 쉽지 않으나 초월적인 힘이나 악의 세력이 지닌 약탈적인 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흰색"입니다. 때로는 미학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흰 달) 대부분 경우에는 상징적으로 사용됩니다. 흰색은 하느님의 색이고 그리스도의 색으로서 신성과 초월성을 나타냅니다. 특별히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또 승리의 기쁨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얀 옷을 입고 나와 함께 거닐 것이며"(3, 4)라든지 "승리하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며"(3, 5)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흰 말"(6, 2; 19, 11)은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능력을 말하는데 인간의 역사 안에서 그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또 "희고 깨끗한 모시옷을 입고 흰말을 탄" 하늘의 군대(19, 14)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는 무리들을 가리킵니다. 인자가 타고 내려오시는 "흰 구름"(14, 14)은 아직도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이 땅과 인간과 대조되는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초월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37. 묵시록에 나타난 상징적인 숫자는 어떤 것들입니까?

묵시록을 보면 숫자가 다양하게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어떤 숫자는 굉장히 과장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린양을 찬양하고 있는 천사들과 생물들과 원로들의 숫자가 '수천 수만'이라든지(5, 11), 기마병의 수효가 '이 억'이나 된다는 (9, 16) 것 등입니다. 그리고 어떤 숫자는 상징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숫자가 나타내는 상징성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7은 음력 한 달의 4분의 1로서 완전함, 완성, 충만함을 나타냅니다. 묵시록에 7교회, 7봉인, 7나팔, 7대접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전체적인 것(모든 것)을 나타냅니다. 4는 동서남북, 곧 사방을 가리킵니다. 또 창세기(2, 10이하)에 보면 낙원에 흐르는 강 하나가 네 줄기로 갈라져 땅에 물을 대는 것을 보고 온 세상을 뜻하기도 합니다. 12는 일년 12달을 가리키는 숫자로서 7과 같이 완전함을 나타냅니다. 또 이스라엘 열두 부족, 열두 사도를 가리킵니다. 1,000은 최고의 숫자로서 하느님의 통치기간이나 그리스도의 활동기간을 나타냅니다(20, 1-6 참조). 이상이 완전한 수, 충만한 수, 즉 길수(吉數)입니다.

7과는 대조적으로 3½이 있습니다. 이 숫자는 전체를 이등분한 것이기에 한 부분을 나타냅니다. 환란의 기간을 나타내기도 하고 일시적인 상황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마흔 두 달(13, 5)이나 "일천 이백 육십 일"(11, 3)은 삼 년 반이라는 기간을 말하는 것이므로 3½과 같습니다. 6은 7에서 1이 모자라므로 불완전한 숫자입니다. 그 이외에 10은 구약에서는 역사의 한 주기를 나타내지만 묵시록에서는 세상 왕들의 세력이나 완성을 뜻합니다(13, 1). 5는 제한된 재앙의 기간을 뜻합니다(9, 5의 메뚜기의 재앙기간). 또 ⅓, ¼은 일시적인, 불완전한, 부분적인 것을 뜻합니다(8, 7이하).

묵시록에서 특별한 것은 숫자의 결합을 통한 숫자놀음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개발한 인위적인 숫자놀음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 예를 보면 144,000으로(7, 4) 이것은 12×12 1,000에서 계산된 것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이스라엘 열두 부족을 가리키는 12와 어린양의 열두 사도를 가리키는 12에다가 인간 역사 안에서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역동적 구원의 기간인 1,000의 곱수지요. 이 숫자는 신구약을 통틀어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엄청나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숫자를 근거로 하여 구원받을 사람들의 수를 144,000명으로 제한하려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몇몇 신흥종교들의 해석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38. 그러면 묵시록에 나오는 숫자 666(묵시 13,18)이 가리키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이 숫자의 해석에 대해서 수많은 연구가 있어왔고 많은 해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의 해석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해서 결정적인 해답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6이라는 숫자는 12의 절반이고 또 7에서 하나 모자라는 숫자입니다. 그러니까 12가 상징하는 계약을 파기하는 숫자요, 7이 상징하는 완전에서 모자라는 숫자입니다. 그러기에 6은 불길하고 부족한 숫자, 즉 흉수(凶數)이지요. 이 흉수가 셋이나 모였으니 최악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묵시록 13장 18절에 "그 숫자는 사람의 이름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했기에 과연 이 숫자로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하고 연구에 연구가 계속되었습니다. 어쩌면 묵시록 저술 당대의 그리스도 신자들은 이 숫자가 누구를 가리키는 줄 알았겠지만 지금의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으니 추측이 난무할 뿐입니다. 그래서 666에 해당하는 어떤 실재 인물을 찾아내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이 방법은 어떤 개인의 이름의 알파벳을 숫자로 계산해서 도합 666이 되게 하는 소위 '암호표기법'(gematria= 숫자놀이)입니다. 이 방법은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유행했습니다.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는 다른 특별한 숫자가 없었고 모든 알파벳에 고유의 수가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예로서 a=1, b=2, k=20 등이지요. 이렇게 볼 때 당시 교회를 박해한 로마 황제 중 가장 가능성 있는 황제는 네로입니다. 네로 황제(네로 카이사르=Nero Caisar)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쓰면 NRUN QSR인데 이 알파벳에 숫가를 적용해보면 N(50)+R(200)+U(6)+N(50)+Q(100)+S(60)+R(200) =666이 됩니다.

그 이후 사람들은 이런 방법으로 666이라는 숫자를 온갖 사람들에게 적용시키고 있는데, 예를 들면, 네로, 카이저 빌헤름과 히틀러에 이르기까지의 폭군들과 심지어 로마 교황님에게까지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리한 해석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숫자는 당시에 교회를 가장 심하게 박해했던 로마제국, 특히 제국을 대표하는 로마 황제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39. 성서에 보면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가톨릭 교회에서는 왜 성물(십자고상, 묵주, 메달 등)과 성상(예수님상, 성모님상, 성인상 등)을 공경하고 중요시합니까? 개신교 형제들이 자주 비난합니다.

이 문제는 성서학적으로나 종교사적으로 볼 때 그리 간단하지 않고 많은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한 세기가 훨씬 넘도록(739-843년) 동방교회 안에서, 16세기 종교개혁시대에는 종교개혁자들 사이에서 성화상(聖畵像) 문제로 심각한 사태에까지 이르렀고, 급기야 두 시대(8-9세기와 16세기)에 성화상 파괴자들(Iconoclasts)은 모든 성당 안의 성화(Icon)와 성상을 모조리 파괴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여파로 아직도 개신교에서는 성화상과 성상에 대한 공경을 우상으로 보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에서 성상금령을 다룬 기본법은 출애굽기 20장 4-6절과 신명기 5장 8-10절에 있습니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출애 20, 4-5). 신명기 5장 8-10절도 이와 비슷한 내용입니다. 그 이외에도 출애굽기 20장 23-24절, 34장14.17절; 레위기 19장 4절; 신명 기 4장 16-19절, 27장 15절에도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금령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금령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앞의 구절들에서 말하는 것은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야훼 하느님 상을 결코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는 유일한 하느님으로서, 어떤 상이나 물건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과 위격적인 관계를 맺고 계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고대 종교에서는 어떤 신상을 만들어 놓고 예배를 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면 그 상이 상징하는 실체(신)에게 어떤 의도된 작용이 전달된다고 믿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신이 신상을 매개로 하여 섬기는 자에게 어떤 작용(예를 들면, 축복을 한다든지, 보호를 한다든지)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주술적이고 기복적인 것이 들어 있지요. 하지만 야훼 하느님께서는 인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분이 아니시기에 주술적이고 기복적인 사고방식을 철저히 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야훼 하느님은 인간의 그 어느 생각이나 모습에 담길 수 없는 초월적인 분이시기에 인간은 절대적인 경외심을 갖고 섬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화상 공경에 대한 논란의 역사

구약성서에서 야훼 하느님의 상을 절대로 만들지 말라고 하였으나, 사실 하느님의 현존을 암시하는 상징물이 용인되었으니 솔로몬 성전에 있던 궤약의 궤나 거룹 등이었습니다(1열왕 6, 19-30; 8, 9 참조). 그리고 에제키엘 1장 5절, 출애굽기 25장 18-22절 등에서도 동물모양의 조각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구약성서의 계명이 예술행위 자체는 배척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요한 1, 14) 그 모습을 드러내셨다고 믿는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는 달리 점차 예수님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2,3세기에 벽화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초상화가 그려졌으며, 4,5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성상을 만들어 공경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동방교회에서는 '이콘'(Ikon=성화)이라 불리는 것의 제작과 사용이 성행하였는데, 이것은 손쉽게 가지고 다닐 수 있을 만큼 크기의 것으로(목판화, 벽화, 모자이크, 조각) 그 목적은 주로 그림을 건 곳에 그려진 성인을 현존케 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새로운 신심형태로 발전하여 수도자들의 방이나 집, 감옥이나 선박에 이콘을 걸고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6세기까지는 교부들이 성화상의 존재와 공경을 대체로 인정하다가 7세기에 들어서서는 십자가의 공경과 그리스도교적 성화상의 공경이 본격적으로 옹호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 일각에서는 쉽게 이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이 문제로 인해 교파까지 생기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복합적인 요인으로 동방교회 전역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대논쟁과 격돌을 빚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동로마제국의 레오 3세 황제(717-741년 재위)는 성상공경이 회교도나 유대교인을 전교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726년에 모든 성상을 우상으로 여기고 다 때려부수어 폐기하라는 칙령을 내리면서 난리가 난 것입니다. 많은 수도회와 로마 교황들은 여기에 반대했으나 이 파괴운동은 좀처럼 꺼지지 않다가 마침내 테오도라 황후에 이르러 843년에 종식되었습니다.

종교개혁시대에 성상 공경은 또다시 커다란 분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주역인 루터(1483-1546)는 오히려 성상 논란을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았으나 몇몇 개혁자들은 달랐습니다. 칼슈타트(1480-1541)는 성상과 우상을 동일시한 나머지 성상을 바라보기만 해도 섬기는 것이나 다름없이 일계명을 범하는 것이며, 이는 간통이나 살인을 훨씬 능가하는 극악대죄라고 단정했습니다. 츠빙글리(1484-1531) 역시 1523년에 취리히 시에서 성상 파괴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칼빈(1509-1564)은 "신상으로 꾸며진 성당보다는 창녀들이 차라리 깨끗하다"면서 1531년 제네바에서 성상이란 성상은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해버렸습니다.

한편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상논쟁과 파괴가 야기한 소란과 분열을 수습하고자 여러 지방 공의회를 열어 이 문제를 토론하면서, 다른 편으로는 반종교개혁적인 성격을 띤 교회예술이 발달하여 화려하고 생기 넘치는 바로크 종교건축과 미술과 음악을 탄생시켰습니다. 개신교인들이 반대하던 미사를 재강조하기 위하여 제단을 무대화했고, 7성사를 시각적으로 강조하여 형상화했고, 성모상을 영예의 자리에 성대하게 모시면서 찬탄과 환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썼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호교적인 교리를 가시적으로 재강조하면서 전체적으로 참담한 암흑기를 거쳐 나온 삶의 기쁨도 넘쳐흘렀습니다.

우상인가 공경인가?

성화상의 공경문제는 어쩌면 하느님과 인간이라는 실존적 존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적인 존재로 절대자이시고, 초월자이시며, 무한한 분이십니다. 한편 그분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인간은 육적이고 유한한 존재입니다. 무한하시고 초월자이신 하느님께서는 결코 인간의 사고와 판단, 지식의 영역 안에 들어오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떻게 하든지 그분을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위치 안에서 파악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존재나 사물이 인간의 감각으로 먼저 파악되지 않으면 결코 인간 정신 세계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존재이기에 하느님 또한 역사적으로 당신을 육화된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드러내 보이셨으며, 인간 편에서도 형상의 표지를 통해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화상 파괴의 논쟁에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초월한 존재, 정신적 존재이신 하느님을 어떻게 형상화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화상 옹호론자들은 이미 하느님의 편에서 먼저 인간의 형태를 취하시기까지 하셨으니, 우리 또한 구체화된 길을 통해서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은 타당할 뿐 아니라 필요하고 좋다는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반대론자들은 도대체 초월한 실체를 어떻게 구상화하느냐며, 사람들이 무엇이든 해놓고 나면 그것이 마치 성인인 양, 또는 특별한 신통력이라도 지닌 양 거기에 매달려 미신적으로 쏠리기 때문에 오용되기 쉽고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두 입장 모두 저마다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 성화상을 존중하는 가톨릭 교회나 동방교회에서 그것을 하느님처럼 생각하는 신자들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단지 하느님께 향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표상이요, 그분께 대한 신앙을 나타내는 표현물로 존중될 뿐이고 그리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종교적 미술과 성 미술은 그 본질상 인간의 작품으로 어느 정도 표현해 보려는, 하느님의 한없는 아름다움을 지향한다. 또한 종교적 미술과 성 미술은 작품을 통해, 사람의 정신을 정성되이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두지 않는 만큼, 하느님과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영광을 위해 봉헌되는 것이다"(전례헌장 122항)고 단정했습니다.

그러므로 시대와 지역에 따라 올바른 하느님의 모습을 담고자 하는 각종 시도는 존중되고 권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성화상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거나 왜곡시킬 수 있는 위험성 역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 자신은 본질상 전혀 표상화될 수 없는 초월한 존재이시니 만큼, 이를 언제나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아무리 인간적으로 뛰어난 작품일지라도 그것은 하느님의 그림자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 역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상을 절대자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사물이나 가치라고 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경계하고 타파해야 할 우상은 성화상 공경이 아니라 물질과 권력, 그리고 명예일지 모릅니다. 이것들이 인생의 최종목적이고, 이것들을 하느님 자기에 놓는 자들이야말로 참으로 우상숭배자들일 것입니다.

40. 성서에 보면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가톨릭 교회에서는 왜 성물(십자고상, 묵주, 메달 등)과 성상(예수님상, 성모님상, 성인상 등)을 공경하고 중요시합니까? 개신교 형제들이 자주 비난합니다.

이 문제는 성서학적으로나 종교사적으로 볼 때 그리 간단하지 않고 많은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한 세기가 훨씬 넘도록(739-843년) 동방교회 안에서, 16세기 종교개혁시대에는 종교개혁자들 사이에서 성화상(聖畵像) 문제로 심각한 사태에까지 이르렀고, 급기야 두 시대(8-9세기와 16세기)에 성화상 파괴자들(Iconoclasts)은 모든 성당 안의 성화(Icon)와 성상을 모조리 파괴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여파로 아직도 개신교에서는 성화상과 성상에 대한 공경을 우상으로 보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구약성서에서 성상금령을 다룬 기본법은 출애굽기 20장 4-6절과 신명기 5장 8-10절에 있습니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출애 20, 4-5). 신명기 5장 8-10절도 이와 비슷한 내용입니다. 그 이외에도 출애굽기 20장 23-24절, 34장14.17절; 레위기 19장 4절; 신명 기 4장 16-19절, 27장 15절에도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금령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금령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앞의 구절들에서 말하는 것은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야훼 하느님 상을 결코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는 유일한 하느님으로서, 어떤 상이나 물건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과 위격적인 관계를 맺고 계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고대 종교에서는 어떤 신상을 만들어 놓고 예배를 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면 그 상이 상징하는 실체(신)에게 어떤 의도된 작용이 전달된다고 믿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신이 신상을 매개로 하여 섬기는 자에게 어떤 작용(예를 들면, 축복을 한다든지, 보호를 한다든지)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주술적이고 기복적인 것이 들어 있지요. 하지만 야훼 하느님께서는 인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분이 아니시기에 주술적이고 기복적인 사고방식을 철저히 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야훼 하느님은 인간의 그 어느 생각이나 모습에 담길 수 없는 초월적인 분이시기에 인간은 절대적인 경외심을 갖고 섬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화상 공경에 대한 논란의 역사

구약성서에서 야훼 하느님의 상을 절대로 만들지 말라고 하였으나, 사실 하느님의 현존을 암시하는 상징물이 용인되었으니 솔로몬 성전에 있던 궤약의 궤나 거룹 등이었습니다(1열왕 6, 19-30; 8, 9 참조). 그리고 에제키엘 1장 5절, 출애굽기 25장 18-22절 등에서도 동물모양의 조각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구약성서의 계명이 예술행위 자체는 배척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요한 1, 14) 그 모습을 드러내셨다고 믿는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는 달리 점차 예수님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2,3세기에 벽화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초상화가 그려졌으며, 4,5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성상을 만들어 공경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동방교회에서는 '이콘'(Ikon=성화)이라 불리는 것의 제작과 사용이 성행하였는데, 이것은 손쉽게 가지고 다닐 수 있을 만큼 크기의 것으로(목판화, 벽화, 모자이크, 조각) 그 목적은 주로 그림을 건 곳에 그려진 성인을 현존케 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새로운 신심형태로 발전하여 수도자들의 방이나 집, 감옥이나 선박에 이콘을 걸고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6세기까지는 교부들이 성화상의 존재와 공경을 대체로 인정하다가 7세기에 들어서서는 십자가의 공경과 그리스도교적 성화상의 공경이 본격적으로 옹호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 일각에서는 쉽게 이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이 문제로 인해 교파까지 생기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복합적인 요인으로 동방교회 전역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대논쟁과 격돌을 빚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동로마제국의 레오 3세 황제(717-741년 재위)는 성상공경이 회교도나 유대교인을 전교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726년에 모든 성상을 우상으로 여기고 다 때려부수어 폐기하라는 칙령을 내리면서 난리가 난 것입니다. 많은 수도회와 로마 교황들은 여기에 반대했으나 이 파괴운동은 좀처럼 꺼지지 않다가 마침내 테오도라 황후에 이르러 843년에 종식되었습니다.

종교개혁시대에 성상 공경은 또다시 커다란 분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주역인 루터(1483-1546)는 오히려 성상 논란을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았으나 몇몇 개혁자들은 달랐습니다. 칼슈타트(1480-1541)는 성상과 우상을 동일시한 나머지 성상을 바라보기만 해도 섬기는 것이나 다름없이 일계명을 범하는 것이며, 이는 간통이나 살인을 훨씬 능가하는 극악대죄라고 단정했습니다. 츠빙글리(1484-1531) 역시 1523년에 취리히 시에서 성상 파괴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칼빈(1509-1564)은 "신상으로 꾸며진 성당보다는 창녀들이 차라리 깨끗하다"면서 1531년 제네바에서 성상이란 성상은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해버렸습니다.

한편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상논쟁과 파괴가 야기한 소란과 분열을 수습하고자 여러 지방 공의회를 열어 이 문제를 토론하면서, 다른 편으로는 반종교개혁적인 성격을 띤 교회예술이 발달하여 화려하고 생기 넘치는 바로크 종교건축과 미술과 음악을 탄생시켰습니다. 개신교인들이 반대하던 미사를 재강조하기 위하여 제단을 무대화했고, 7성사를 시각적으로 강조하여 형상화했고, 성모상을 영예의 자리에 성대하게 모시면서 찬탄과 환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썼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호교적인 교리를 가시적으로 재강조하면서 전체적으로 참담한 암흑기를 거쳐 나온 삶의 기쁨도 넘쳐흘렀습니다.

우상인가 공경인가?

성화상의 공경문제는 어쩌면 하느님과 인간이라는 실존적 존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적인 존재로 절대자이시고, 초월자이시며, 무한한 분이십니다. 한편 그분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인간은 육적이고 유한한 존재입니다. 무한하시고 초월자이신 하느님께서는 결코 인간의 사고와 판단, 지식의 영역 안에 들어오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떻게 하든지 그분을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위치 안에서 파악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존재나 사물이 인간의 감각으로 먼저 파악되지 않으면 결코 인간 정신 세계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존재이기에 하느님 또한 역사적으로 당신을 육화된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드러내 보이셨으며, 인간 편에서도 형상의 표지를 통해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화상 파괴의 논쟁에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초월한 존재, 정신적 존재이신 하느님을 어떻게 형상화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화상 옹호론자들은 이미 하느님의 편에서 먼저 인간의 형태를 취하시기까지 하셨으니, 우리 또한 구체화된 길을 통해서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은 타당할 뿐 아니라 필요하고 좋다는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반대론자들은 도대체 초월한 실체를 어떻게 구상화하느냐며, 사람들이 무엇이든 해놓고 나면 그것이 마치 성인인 양, 또는 특별한 신통력이라도 지닌 양 거기에 매달려 미신적으로 쏠리기 때문에 오용되기 쉽고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두 입장 모두 저마다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 성화상을 존중하는 가톨릭 교회나 동방교회에서 그것을 하느님처럼 생각하는 신자들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단지 하느님께 향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표상이요, 그분께 대한 신앙을 나타내는 표현물로 존중될 뿐이고 그리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종교적 미술과 성 미술은 그 본질상 인간의 작품으로 어느 정도 표현해 보려는, 하느님의 한없는 아름다움을 지향한다. 또한 종교적 미술과 성 미술은 작품을 통해, 사람의 정신을 정성되이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두지 않는 만큼, 하느님과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영광을 위해 봉헌되는 것이다"(전례헌장 122항)고 단정했습니다.

그러므로 시대와 지역에 따라 올바른 하느님의 모습을 담고자 하는 각종 시도는 존중되고 권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성화상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거나 왜곡시킬 수 있는 위험성 역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 자신은 본질상 전혀 표상화될 수 없는 초월한 존재이시니 만큼, 이를 언제나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며, 아무리 인간적으로 뛰어난 작품일지라도 그것은 하느님의 그림자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 역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상을 절대자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사물이나 가치라고 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경계하고 타파해야 할 우상은 성화상 공경이 아니라 물질과 권력, 그리고 명예일지 모릅니다. 이것들이 인생의 최종목적이고, 이것들을 하느님 자기에 놓는 자들이야말로 참으로 우상숭배자들일 것입니다.

출처 : 하늘 향한 그리움
글쓴이 : 손드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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